“감기인데 이 약 달라니 답답하죠”…잘못된 ‘항생제 인식’ 확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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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1월 12일 0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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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서울시내 한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을 구입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뉴스1
시민들이 서울시내 한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을 구입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뉴스1

“요즘 감기, 독감, 노로바이러스 환자 많아요. 근데 항생제 처방 안 해줬다고 항의하는 환자도 꽤 있어요. 항생제가 만능인 줄 아는데 바이러스에 항생제를 쓸 이유가 없거든요. 답답하죠.”

코로나19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독감(인플루엔자), 노로바이러스 등 연이은 바이러스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동네 의원들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지만 의사들은 남모를 고충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한다.

경기 수원시의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항생제를 처방해달라는 환자들을 붙잡고 항생제를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지친다”며 “어떤 병이든 항생제만 쓰면 다 금방 낫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진 환자가 많아 답답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항생제는 우리 몸에 세균이 침입해 감염을 일으켰을 때 치료제로 사용한다. 감염된 사람에게는 해를 입히지는 않지만 감염 원인이 되는 세균을 죽이거나 세균 성장을 억제하는데, 이 때문에 세균의 종류와 감염 부위에 따라 적절한 항생제를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항생제는 세균 감염에만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땐 사용할 필요가 없다. 감기, 독감 등에도 만병통치약처럼 항생제를 처방받아 먹는 환자가 많지만, 항생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최근 늘고 있는 노로바이러스 감염 환자도 항생제를 쓸 필요 없고 증상에 대한 약만 먹으면서 한 3일 고생하면 낫는데 항생제를 달라고 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바이러스 감염은 항생제로 치료할 수 없는 데다 항생제를 예방적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부작용이나 내성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며 “이걸 아는 국민들도 아직 많지 않고 의사들도 예방적 차원에서나 환자들 요구로 불필요한 항생제 처방을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항생제는 불필요하게 많이 처방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2022년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결과에 따르면 급성상기도감염(감기) 항생제 처방률은 2022년 32.36%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영유아가 41.31%로 가장 높았고 소아청소년 32.59%, 성인 30.22%, 노인이 21.96%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 항생제 사용량은 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높다.

항생제 사용에 대한 인식은 더 형편없는 수준이다. 질병청에 따르면 2022년 항생제 내성 인식도 조사 결과 800명 중 약 74%가 항생제 용도를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항생제 내성 인식도 조사’에 참여한 800명 중 약 74%가 항생제 용도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질병청 제공) 뉴스1
‘2022년 항생제 내성 인식도 조사’에 참여한 800명 중 약 74%가 항생제 용도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질병청 제공) 뉴스1
이 중 61.9%는 항생제를 세균과 바이러스 감염질환 모두에 사용하는 약물로 안다고 답했고, 바이러스 감염질환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안다는 답변은 6.1%였다. 항생제의 용도를 모른다는 응답도 6.1%로 집계됐다.

반대로 항생제가 감기와 같은 바이러스 감염질환에 효과가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은 24.7%에 불과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항생제 용도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보니 환자가 항생제 처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실제로 의사 1000여명을 조사한 결과 15.8%가 환자가 항생제를 요구해 처방한다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항생제를 시도 때도 없이 쓰게 되면 내성이 생기게 된다는 점이다. 항생제 내성은 항생제 노출시 세균이 자연 적응하거나 증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과 내성균의 확산으로 내성 발생을 촉진한다. WHO는 항생제 내성을 ‘조용한 팬데믹’이라고 규정짓기도 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유엔환경계획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항생제 내성으로 사망한 인구는 127만명이었다”며 “2050년엔 연간 1000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50년 암으로 사망할 것으로 추산되는 인구는 820만명으로 항생제 내성으로 인한 사망자가 암으로 사망하는 환자보다 많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에 WHO는 항생제 내성을 10대 세계 공중 보건의 최대 위협 중 하나로 규정하고 불필요한 항생제 투여를 막기 위한 ‘항생제 적정 사용 관리(스튜어드십)’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질병청에 따르면 항생제 투여를 최소화하는 관리를 하면 △감염치료율 향상 △독성, 알레르기, C.difficile 장염 등 항생제 부작용 감소 △항생제 관련 비용 절감 △입원 기간 단축 △항생제 내성 압력 감소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이에 질병청은 심평원과 협력해 지난 10월부터 WHO가 주관하는 국제 항생제 사용량 감시체계(GLASS-AMC)에 참여해 국제 공조 체계에 따라 내성 감시 시스템 역량 강화에 본격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항생제 내성이 생기면 기존 항생제로는 감염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없게 돼 쓸 수 있는 약이 줄어들게 되고 치료기간, 의료비용, 사망률 등이 늘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항생제를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정확한 용법과 용량을 적절한 기간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질병청 관계자는 “적절한 항생제를 선택해 적정 용량과 치료 기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과거에 처방받은 항생제를 쟁여두고 다시 사용하면 효능이 감소됐을 수도 있고 적절하지 않은 항생제 사용은 내성 발생을 촉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씻기, 예방접종 등으로 감염을 예방해 결국 항생제를 써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며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등 건강관리를 하여 면역력을 강화하고 식품을 충분히 씻어 먹거나 익혀 먹는 등의 일상에서의 노력도 동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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