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고 싶어요” 글 올리자 잼버리로 온정의 손길 쏟아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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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생수 나눔 모임 ‘군산우물’
SNS에 올린 회원글 기폭제 역할
모금글 하루 만에 400만원 모여
치킨―피자 등 간식 지원도 펼쳐

‘2023 새만금 제25회 스카우트잼버리’ 참가 대원들이 태풍 ‘카눈’ 북상으로 야영지에서 철수한 가운데 전북 군산 호원대 기숙사 입구에 ‘군산우물’이 제공한 생수와 이온 음료가 놓여있다.
‘2023 새만금 제25회 스카우트잼버리’ 참가 대원들이 태풍 ‘카눈’ 북상으로 야영지에서 철수한 가운데 전북 군산 호원대 기숙사 입구에 ‘군산우물’이 제공한 생수와 이온 음료가 놓여있다.
“아이들이 군산에 와 있는 시간만큼은 즐겁고 행복했으면 합니다. 힘듦을 모두 날려버리고 좋은 추억만 남기고 가기를 바랍니다.”

남상천 씨(54)는 9일 오후 5시경 전북 군산시 임피면 호원대 기숙사 다산관에 얼음 생수 1000병, 이온 음료 600병을 옮겨놓은 뒤 흐르는 땀을 훔치며 이같이 말했다. 남 씨는 페이스북 페이지 ‘군산스토리 군산우물’의 총괄 매니저를 맡고 있다.

군산우물은 매년 여름 군산 지역 주요 거점에서 더위에 지친 시민에게 무료 얼음 생수를 나눠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내 모임이다.

그는 “물을 일일이 나눠줄 수도 있지만 그런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더라”면서 “입구에 놓으면 지나다니면서 필요할 때 먹을 수 있지 않겠냐”며 웃었다.

남 씨가 생수와 이온 음료를 놓고 온 호원대 기숙사에는 제6호 태풍 ‘카눈’의 북상으로 야영장에서 조기 철수한 ‘2023 새만금 제25회 스카우트잼버리’에 참여했던 이집트와 에콰도르 스카우트 대표단 250명이 머물고 있다.

●“너무 맘이 아프다. 돕고 싶다”

‘2023 새만금 제25회 스카우트잼버리’ 참가 대원들이 5일 지역 연계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전북 군산에 도착한 뒤 ‘군산우물’에서 나눠준 생수와 이온 음료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군산우물 제공
‘2023 새만금 제25회 스카우트잼버리’ 참가 대원들이 5일 지역 연계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전북 군산에 도착한 뒤 ‘군산우물’에서 나눠준 생수와 이온 음료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군산우물 제공
군산우물이 잼버리 참가 대원에게 생수와 이온 음료를 제공하게 된 것은 한 회원이 잼버리가 시작된 1일 “너무 마음이 아프다. 얼음물 가져다 주면 안 될까요”라며 올린 글이 기폭제가 됐다. 운영진은 긴급 논의를 벌였고, 2일 페이스북 페이지에 취지를 설명한 모금 글을 올렸다.

다음 날 아침 계좌를 확인한 남 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400만 원이 넘는 성금이 모였다. 군산우물은 이 돈을 종잣돈 삼아 4일부터 7일까지 지역 연계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군산에 오는 400명의 스카우트 대원에게 매일 얼음 생수 1000병과 이온 음료 600병을 지원했다.

6, 7일에는 잼버리가 열리는 부안군 새만금 야영장을 직접 찾아가 환자들을 돌보는 클리닉과 119구급대에게 생수 2140병과 이온 음료 등 2200병을 전달했다. 이들의 선행 소식이 전해지면서 잼버리 대원을 돕겠다는 손길이 이어졌다. 8일 현재 1082만 원이 모였다.

잼버리 대원의 부실 급식 소식을 전해 들은 뒤에는 멀리 아프리카 작은 나라 나미비아에서 온 스카우트 대원 29명에게 치킨 30마리, 피자 30판을 선물했다.

남 씨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나라들은 부실 급식 소식을 듣고 간식 등을 지원했지만 일본에만 대사관이 있는 나미비아는 지원이 없었다는 소식을 듣고 간식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나미비아 대사관 측은 군산우물에 감사의 의미로 ‘패’를 전달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해왔다.

● 2017년 시작해 현재까지 45만 병 나눔

군산우물의 ‘생수나눔’은 2017년 뙤약볕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에게 한 시민이 생수 1병을 건네는 모습을 목격한 회원이 이를 페이스북 군산스토리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57명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군산 시내 24곳의 거점 점포 앞에서 물을 나눠줬다.

이듬해인 2018년에는 무료 생수 제공 규모가 더 커졌다. 생수 나눔에 힘을 보태는 사람들이 늘면서 무료 생수를 나눠주는 거점을 늘렸다. 올해는 129명이 후원에 참여해 38곳에서 6월 20일부터 생수를 나눠주고 있다. 이들 거점은 나눔에 동참하는 후원회원의 점포 앞이다.

회원 대부분이 자영업에 종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게 앞이 무료 생수 나눔 장소가 됐다. 군산우물이 상온 상태의 생수를 각 거점에 매일 배달하면 각자의 가게에서 얼음으로 얼려 직접 산 아이스박스에 넣어 제공한다. 이들의 나눔에는 대형식음료 업체 대리점을 운영하며 저렴한 가격에 물을 공급하는 대표가 있어 가능했다.

김정헌 군산우물 홍보이사는 “(잼버리) 참가 아이들에게 너무 늦게 (물을) 들고 간 것은 아닌지 미안하다”며 “아이들이 즐겁고 행복한 기억만을 갖고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
#얼음 생수 나눔 모임#군산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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