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일반인은 물론 희생자까지 예외 없다”… 영역 넓힌 ‘악성 댓글’ 근절 대책 시급

  • 동아경제
  • 입력 2023년 7월 12일 17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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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성 뒤에 숨어 무차별적 ‘악성 댓글’ 만연
피해자·희생자 향한 악성 댓글 ‘충격’
허위 사실 밝혀져도 막대한 기업 손실
일부 조사서 “악성 댓글 사회·경제적 손실 연간 35조”
악성 댓글 근절 조치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제시

대형 인터넷 포털과 소셜미디어(SNS),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게시판 이용이 활성화되면서 ‘댓글’은 사람들의 일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작은 인터넷 쇼핑몰에도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할 수 있는 댓글 공간이 마련돼 있다.

국내 인터넷 공간에 댓글이 처음 도입된 지는 어언 20년. 도입 초기 당시 인터넷 댓글은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보다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몰랐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새로운 정보의 장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댓글의 영향력도 커졌다.

하지만 댓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부작용도 뒤따랐다. 무엇보다 댓글 수 자체가 많아지면서 사실 여부 확인이 어려운 내용이 무분별하게 댓글로 달리거나 허위 내용이 사실처럼 퍼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인터넷 콘텐츠 공유가 쉬워지면서 이렇게 달린 악성 댓글이 순식간에 다양한 채널로 퍼지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특히 근거 없는 허위 사실과 악의적 비방·비하 등 ‘악성 댓글(악플)’은 폐해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사회적 문제로까지 여겨지고 있다. 지극히 사적이거나 민감한 내용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댓글로 달리면서 개인이나 기업, 단체 등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일부 개인은 댓글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기업은 이미지가 크게 훼손돼 사업 경쟁력을 잃고 존재 자체가 위협받기도 한다. 무심코 작성한 댓글 한 줄이 인터넷을 넘어 현실 세계에 물리적인 피해를 가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진 것이다.

악성 댓글로 인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변호사 선임비와 의료비 등 사회·경제적 비용이 국내에서만 연간 최대 35조 원으로 추산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연세대 바른ICT연구소는 지난해 악성 댓글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불안과 우울로 인한 행복상실 기회비용(28조9335억 원), 스트레스로 인한 능력저하 기회비용(1조4095억~2조8189억 원), 변호사 선임 및 손해배상 비용(1433억~3조5229억 원), 병원 진료와 치료비용(330억~550억 원) 등이 포함된다.

반면 악성 댓글에 대한 규제와 처벌은 미미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무죄가 선고되거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악플 피해자가 악성 댓글을 지우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포털 등 사업자에게 직접 피해를 입증하면서 요청해야 하는 실정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온라인 댓글 도입은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도입됐지만 이는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며 “악성 댓글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크다는 공감대가 확인된 상황에서 포털이나 커뮤니티 내 무분별한 악성 댓글에 대한 규제와 처벌 강화가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악성 댓글 확산을 막기 위해 댓글 기능 운영 플랫폼 사업자가 악성 댓글을 제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 제도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 무차별적으로 달리는 ‘악성 댓글’… “피해자·희생자도 예외 없다”
최근 악성 댓글은 대상을 한정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달리는 경향을 보인다. 기존에는 연예인이나 대기업 관계자 등 유명인사를 대상으로 악성 댓글이 달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일반인은 물론 심지어 사건 피해자를 비방하는 내용이 올라와 피해자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작년 12월에는 이태원 참사로 친구를 잃은 생존자가 한 숙박업소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참사 이후 이 생존자는 심리치료를 받기도 했는데 계속되는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극단적 선택에는 무분별한 악성 댓글이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숨진 해당 생존자 가족은 “참사로 숨진 친구들을 모욕하는 댓글을 보면서 화를 많이 냈다”며 “홀로 살아남아 미안해하는 마음이 컸는데 비난 댓글을 보고 무너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이태원 참사 직후에는 놀러갔다가 숨진 것이기 때문에 애도할 필요가 없다거나 마약과 연관된 참사라는 유언비어 등 악성 댓글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올라왔다.

심지어 살인사건 가해자가 아닌 희생자를 비방하는 악성 댓글도 있다. 지난해 9월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유가족 역시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살인사건 희생자 가족은 “‘한녀(한국 여성)가 죽는데 무슨 이유가 있느냐‘는 댓글을 보고 함께 숨 쉬고 같은 공간을 살고 있는 시민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며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생산되는 악성 댓글은 한 번 달리고 나면 경쟁적으로 더 강하고 자극적인 댓글로 이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이를 재구성한 글이나 영상으로 재생산되기도 한다”며 “불법적인 개인 신상 정보가 공유되는 경우도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 기업 존폐에도 영향 미치는 악성 댓글… “허위 내용에도 막대한 차질”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등 사회적 신뢰가 더욱 중요해진 경영환경 속에서 기업이나 기업인을 향한 비방성 악성 댓글은 사회적 평판 하락 등 자칫 회복 불가능한 손실까지 발생시키기도 한다.

지난 2021년에는 직장인 전용 SNS에 한 기업 직원이 허위 내용을 사실처럼 올렸다. 글을 통해 직장 상사들을 비난·비방하고 회사 최고경영자(CEO)가 여직원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기업 측은 글 작성자가 허위 사실을 적시해 회사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실제 조사 결과 글을 올린 직원과 CEO는 사무공간 위치가 달라고 두 사람은 만난 적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개인이 무심코 올린 허위 내용이지만 기업은 이로 인해 이미지에 타격을 받았고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기회)비용이 필요했다.

기업이 경쟁업체를 깎아내리기 위해 조직적으로 악성 댓글을 작업한 사실이 적발된 경우도 있다. 지난 2019년 3월 인터넷 육아정보카페 등에 한 우유회사 제품에서 이상한 맛이 난다거나 인근에 원전이 있어 방사능 유출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등 특정 기업을 비방하는 근거 없는 글과 댓글이 무더기로 올라왔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해당 우유회사는 경찰에 수사를 외뢰했다. 수사 결과 경쟁업체가 대행사를 통해 50개의 아이디로 조직적 비방 댓글을 작업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한 주류업체는 경쟁사 주류에서 경유가 검출됐다는 허위 글을 공유했다가 적발됐고 입시교육업체가 댓글 전문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악성 댓글 20만여 건으로 경쟁업체와 소속 강사를 비난한 사실이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터무니없는 허위 사실인 경우에도 인터넷에 퍼지면 영업과 채용 등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고 전했다.
○ ‘솜방망이 처벌’ 악성 댓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목소리↑
현행법상 악성 댓글을 달아 적발되면 형법상 모욕죄로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정보통신망법상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인정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이 가능하다. 만일 댓글 내용이 허위일 경우 처벌 수위는 더욱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법부에서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되더라도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단순 일회성 악성 댓글로 처벌받는 경우는 사실상 없고 댓글이 허위라 하더라도 비방 목적이 없었거나 공익성을 인정받으면 유죄 선고를 피할 수 있다.

국회에는 악성 댓글 작성자 처벌 수위를 높이거나 관련 법 신설 등 총 9건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본회의 문턱을 넘은 사례가 없다. 업계에서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형사처벌 강화 주장이 표현의 자유 약화 우려로 번번이 가로막힌 것으로 보고 있다.

악성 댓글에 대한 민사적 해결책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로도 볼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경고효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평가다. 미국 등 해외 국가 일부에서는 유사한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비방성 악성 댓글은 익명이라는 가면 속에 숨어 욕설과 모욕을 쏟아내 사회적 소모를 가속화하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행복추구권 등 다른 국민들의 헌법상 권리 역시 동등하게 보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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