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내가 잘 알지”…꼰대에게 부족한 치명적 한가지 ‘지적 겸손’[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9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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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다룹니다. 일상 속 심리적 궁금증이나 고민이 있다면 이메일(best@donga.com)로 알려주세요. 기사로 알기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나만 옳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꼰대를 상대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러는 걸까. 심리학의 ‘지적 겸손’이라는 개념을 통해 살펴보자. 양경수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
나이와 관계없이 ‘나만 옳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꼰대를 상대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러는 걸까. 심리학의 ‘지적 겸손’이라는 개념을 통해 살펴보자. 양경수 작가 인스타그램 캡처


직장인 박지윤 씨(30·가명)는 A팀장과 대화할 때 삶은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하다. 30대에 빠르게 승진해 사내 최연소 팀장 자리에 오른 A팀장은 후배들이 아무리 타당한 아이디어를 내도 자기가 아는 방식이 맞다고 끝까지 우긴다. 신입 시절 유통회사의 현장 실무 경험이 있는 박 씨는 “현장에선 상황이 다르다”며 팀장을 설득해보려 했지만, A팀장은 오히려 “내가 이 바닥에 더 오래 있었다”며 듣지 않는다. A팀장은 박 씨처럼 자신을 설득하려 드는 후배들을 자기 책상 옆에 앉혀 놓고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설교를 늘어놓는다. A팀장은 스스로 이를 ‘참교육’이라 부른다.

젊은 나이지만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젊은 꼰대’를 패러디한 SNL코리아 ‘MZ 오피스’의 한 장면. 쿠팡플레이 화면 캡처
젊은 나이지만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젊은 꼰대’를 패러디한 SNL코리아 ‘MZ 오피스’의 한 장면. 쿠팡플레이 화면 캡처


꼰대는 더 이상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연장자가 옛날 얘기를 꺼내 충고를 늘어놓으며 ‘라떼는(나때는)’을 시전하지 않더라도, 요즘에는 2030세대 ‘젊꼰(젊은 꼰대)’에 대한 불만도 높다. 실제로 올해 1월 한 취업포털 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직장인 595명 중 71.4%가 “직장에 젊은 꼰대가 있다”고 답했다. 이와 유사한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직장인들이 꼽은 최악의 젊은 꼰대 유형으로 ‘자신의 경험이 전부인 양 충고하며 가르치는 유형’이 1위를 차지했고, ‘본인의 답을 강요’하거나 ‘상명하복을 강요’하는 유형이 뒤를 이었다. 물론 여기에 더해 ‘꼰대질’에는 공감 능력 부족, 안하무인 태도, 자기중심적 소통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사실 ‘젊꼰’이냐 ‘늙꼰’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의 문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용하지 않고, ‘내가 옳다’고 여기는 등 사고가 경직됐다는 것이다. 이는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를 심리학 용어인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이라는 개념으로 살펴볼 수 있다.

지적 겸손?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인정

지적 겸손이란, 내가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따라서 지적으로 겸손한 사람은 새로운 정보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자신의 지식을 과신하지 않는다. 또 다른 사람의 관점을 존중하고, 상대의 의견이 타당하다면 내 의견을 수정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내가 틀렸고, 다른 사람이 맞다’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면 지적 겸손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이런 상황 자체를 자신에 대한 도전이나 위협으로 간주한다.

지적으로 겸손한 사람들의 특징
-다른 사람의 관점을 존중한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으면 실수를 인정한다.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나의 관점을 바꿀 수 있다.
-내가 모르는 영역이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한 인식이 있다.
-특정 주제에 대해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할 줄 안다.
-내가 모르는 지식이나 주장을 외면하지 않는다.

반면 사고가 경직된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지적으로 겸손하지 못 한 사람들의 특징
-나는 내가 항상 옳다고 생각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종종 하곤 한다.
-‘왕년에’ ‘예전에’ ‘그때는’ 등의 말을 하면서 내 주장을 펼칠 때가 많다.
-사람들이 내 생각이나 가치관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 매우 언짢아진다.

(‘꼰대 척도의 개발 및 타당화’ 문항에서 일부 발췌)


진짜로 똑똑해서 남을 가르치려 드는 걸까?

지적 겸손이 부족한 사람은 자기 능력을 실제보다 과신하고 자랑하는 경향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적 겸손이 부족한 사람은 자기 능력을 실제보다 과신하고 자랑하는 경향이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자신이 정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은 진짜 능력이 훌륭한 사람들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본인만의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 할지라도, 실제보다 스스로 과대평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엘리자베스 크럼레이 멘쿠소 미국 페퍼다인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꼰대들이 스스로 인식하는 자기의 능력치와 실제 능력 사이의 차이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했다. 연구팀은 성인 120명을 대상으로 지적 겸손 수준을 측정하고, 어휘·산술·추론·공간지각 등을 측정하는 인지 능력 검사를 했다. 이어 자신이 얼마나 인지 능력 검사를 잘 수행했는지, 자신의 문제 해결 능력이 타인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에 있을지 자가 평가를 하도록 했다.

그 결과 지적 겸손 점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실제 인지 능력보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인지 능력 검사에서 받은 점수보다 자신이 더 잘했을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또 이들은 자가 평가에서 ‘나보다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90% 정도 된다’ 등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할 것이라는 답을 더 많이 골랐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메타인지 떨어져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면 지적 겸손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면 지적 겸손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지적 겸손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는 ‘메타인지’가 떨어진다. 메타인지란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자신의 생각에 대해 판단하고 통찰하는 능력이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파악하는 메타인지가 떨어지면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실제로 지적 겸손을 측정하는 검사 문항에 △나는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나의 아이디어는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보다 우수하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인정한다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런 의식은 새로운 정보를 접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태도로 이어진다. 배워야겠다는 의지가 별로 없기에 실제로 아는 지식의 양이 많다고 보기 어렵다. 이와 반대로 지적으로 겸손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실제로는 더 똑똑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정보 습득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갖고 있어서다. 이들은 자신이 잘 모를 수도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새로 접하게 되는 지식을 습득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런 경향은 학업 성적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심리학과 연구팀에 따르면, 자기 능력을 과신하는 대학생일수록 더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들은 객관식 시험에서 오답을 찍어 놓고도 실제 점수보다 자신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자신감 있게 오답을 골라놓고 스스로는 잘했다고 여기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이들이 오답을 더 많이 고르는 또 다른 이유는 주어진 문제에 대해 천천히 생각하고 분석하기보다는 직관적으로 빠르게 답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성찰적 사고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야구 방망이와 공을 합친 가격은 1만1000원인데, 방망이는 공보다 1만 원이 비싸다. 공은 얼마일까?’라는 문제를 더 잘 틀린다. 성급하게 ‘1000원’이라고 답하는 것이다. (답은 방망이는 1만500원, 공은 500원이다.)



세상에 없는 단어인데… “이거 내가 잘 알지”

지적 겸손이 부족한 사람들의 안 좋은 특징 가운데 또 하나는 몰라도 아는 척을 한다는 것이다. 미 페퍼다인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성인 604명을 대상으로 또 다른 연구를 했다. 연구팀은 ‘나폴레옹’ 같은 실존 인물과 ‘○○여왕’과 같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짜 이름을 섞은 고유 명사 25개를 실험 참가자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이 단어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 결과 지적 겸손 점수가 낮은 사람은 가짜 이름에 대해서도 ‘매우 친숙하며 잘 알고 있다’고 답을 했다.

지적으로 겸손한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남을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지적으로 겸손한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남을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게다가 여기에 ‘남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이 더해질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열등하기에 자신이 나서서 잔소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이와 반대로 지적으로 겸손한 사람일수록 다음과 같은 문장에 동의하지 않는 경향이 컸다.

1. 다른 사람들을 계몽하는 것이 나의 의무다
2. 나의 아이디어는 다른 사람을 교육하는 데 쓰여야 한다.
3. 나는 내 의견을 말해야 할 사회적 의무를 느낀다.
4.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에서 이겨야 한다.
5. 지능이 높고, 정보가 많은 사람은 지능이 낮고, 정보가 부족한 사람을 교육할 책임이 있다.
6. 나는 내가 결정을 내리는 권위 있는 자리에 있는 상상을 즐겨 한다.
7. 내 말은 의미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8. 몇몇 사람들은 어리석은 것을 그냥 믿어버린다.
9. 세상에는 멍청한 사람이 많다.
10. 모든 사람이 나처럼 세상을 보면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

(연구에 사용된 ‘사회적 자경주의(Social Vigilantism)’ 척도에서 발췌)


정치적 입장이 지나치게 확고한 것도 문제

자신이 틀렸다고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정치적 입장은 누구보다 확고할 가능성이 크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도 받아들이지 않고,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합리적인 이유로 의견을 바꾸는 것조차 싫어한다.

마크 리어리 미 듀크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지적 겸손이 정치적 입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성인 205명을 모집해 각 사람의 지지 정당을 체크하고,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보여줬다.

선거 후보자 A는 해당 사안에 대해 왜 의견이 바뀌었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이 문제의 이면에 있는 사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고,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자 상대편 후보 B는 그에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갈대”라고 비난했다.

연구팀은 의견을 바꾼 정치인 A가 어떤 정당 소속이고, 어떤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바꿨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 뒤 이들에게 정치인 A를 지지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예측할 수 있듯, 지적 겸손 점수가 낮은 사람은 입장을 바꾼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지적 겸손 점수가 높은 사람은 해당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한 경우가 더 많았다.

연구팀은 “생각이나 입장을 바꾼다는 것은 모호함이나 불확실성이 뒤따르는 일인데, 지적 겸손이 부족한 사람은 사고가 폐쇄적이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싫어한다”며 “그렇게 되면 기존의 신념에 집착하게 되고, 입장을 바꾸는 정치인도 싫어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지적으로 겸손한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이 잘못됐다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다른 사람 역시 사고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보이면 이를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은 지적 겸손이 부족한 사람들의 대인 관계 특성에 대해 이와 같은 단어로 설명한다. ‘자만심’ ‘경직성’ ‘타인 무시’ ‘배타적’ ‘갈등 유발’ ‘공감 능력 결여’ 등. 혹시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나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잠시 나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제3자의 시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자. 내 주변에 제대로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는지,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사람인지 말이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가장 필요한 메타인지란 바로 이것이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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