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수도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 7%… 진료대란 불가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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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블랙홀’ 된 의대]
입원중단 길병원 사태 재연 우려
세브란스도 충원율 20%대 불과
2025년 수련병원 80% 공석 예상

2021년 9월 한 아이가 소아청소년과 의원에서 독감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뉴스1
2021년 9월 한 아이가 소아청소년과 의원에서 독감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인천의 상급종합병원인 가천대 길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입원병동의 운영 중단을 선언했다. 환자나 교수가 없어서가 아니다. 환자를 돌볼 레지던트가 한 명밖에 남지 않아서였다. 소아청소년과를 필두로 필수의료 과목의 전공의 충원이 어려워지면서 제2, 제3의 ‘길병원 사태’가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6일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국 수련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은 25.5%다. 그나마도 전체 지원자 53명 중 44명이 서울 소재 병원에 몰렸다. 비수도권 병원들은 소아청소년과 충원율이 평균 6.9%로 사실상 ‘전멸’ 수준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현 추세대로면 2025년 전체 수련병원의 전공의 자리 5곳 중 4곳이 공석이 돼 ‘진료 대란’이 불가피해진다”고 밝혔다.

전공의 모집은 한 번 미달되면 정원을 채우기가 어렵다.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2년 차 윤모 씨(32)는 “한 번이라도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한 병원엔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한다. 인력이 모자란 곳에 막내로 들어가면 과중한 업무가 쏠릴 게 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른바 ‘빅5’로 불리는 서울 주요 상급종합병원 중 지난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한 가톨릭중앙의료원과 세브란스병원은 올해도 충원율이 20%대에 불과했다.

내과는 표면적으로는 충원율이 높다. 하지만 수련을 마친 후 대학병원에 남아 실제 필수의료를 담당하려는 전공의가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내과 레지던트 2년 차 정진형 씨(29)는 “내과 전문의가 된 후 지방에 내려가 소화기 내시경 전문 의사로만 일해도 대학병원 월급의 5, 6배를 번다”며 “힘들고 고된 대학병원을 나갈 날만 기다리는 전공의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신경외과(99.1%)도 충원율 자체는 높지만 같은 이유로 전공의 대부분이 뇌수술보다 위험도가 낮은 척추 수술을 전공하려 드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반면 상대적으로 일이 편하고 수입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으로의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안과 전공의의 경우 올해 전국에서 총 104명을 뽑았다. 전체 전공의 정원 3479명의 3%에 불과하다. 하지만 동아일보 의대생 대상 설문만 보더라도 ‘선호 과목’ 3개 중 하나로 안과를 선택한 의대생은 29.7%나 됐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인턴 중에선 피안성이나 재활의학과 등 인기 과목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면 ‘재수’까지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 의원은 “사명감을 갖고 필수의료 전공을 지망하던 젊은 의사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포기하는 일만은 없도록 필수의료 분야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외과와 흉부외과 전공의에게만 지급되는 월 100만∼150만 원의 수련 보조 수당을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으로 확대해 처우를 개선하고, 전공의를 마치고 병원에 남을 수 있도록 필수의료 전반에 대해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비수도권 병원#소아청소년과 전공의#진료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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