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뇌전증의 날’…“편견 사라지니 병역 비리 기가 차”

  • 뉴스1
  • 입력 2023년 2월 13일 16시 00분


“국가가 뇌전증 환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인식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입니다.”

‘2023 세계 뇌전증의 날’인 13일 심재신 뇌전증 환우 모임 ‘따뜻한 시선’ 대표는 “뇌전증이 병역 비리에 악용됐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에 뇌전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증거”라며 이같이 말했다.

심 대표는 “병역은 국가의 책임이기도 한데 검사마다 결과가 달라 입대 결정도 사실상 환자 개인 판단에 맡겨진 경우가 많다”며 “병을 진단하는 전문의가 검사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진행하는지 국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뇌전증 환자 관리에 정부의 적극적 행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른바 간질로도 알려진 뇌전증은 최근 대규모 병역비리에 악용되면서 환자 관리부터 행정 업무까지 곳곳의 허점을 노출했다.

전국 37만여명으로 추산되는 환자 수 가운데 법에 따라 국가의 관리를 받는 환자는 극소수다. 뇌전증 환자 관리와 지원을 위한 법률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무기한 계류 상태다. 환자들과 의료계는 정부 차원의 정책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국 37만명 추산…의료·병역 관리 허점 드러나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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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간질로도 알려진 뇌전증은 뇌 신경세포의 과도한 전기적 신호에 의해 발병하는 질환이다. 경련이나 발작을 증상으로 수반하며 약물 치료로 완화가 가능하다. 국내에는 약 37만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뇌전증은 특히 전문의도 진단 내리기가 쉽지 않은 병이다. 대한뇌전증학회에 따르면 뇌전증 환자 중 30~40%가 첫 뇌파검사에서 증상이 없는 것으로 판정받는다. 증상이 없는 사람 중에서도 1~2%는 뇌전증파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같은 특성을 노려 최근 배구선수 조재성과 배우 송덕호 등이 연루된 대규모 병역비리에 허위 뇌전증을 장기간 호소해 병역을 면제받는 수법이 동원됐다. 평소에는 증상이 눈으로 드러나지 않고 연기와 구분하기 어려운 특성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증상이 심각해 중증 장애인으로 관리 받는 뇌전증 환자 수는 1만명 내외로 알려져 있다.

실제 한 병역면탈자는 전자기기 게임 도중 화면 불빛 자극으로 갑자기 발작이 발생한 것처럼 연기해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목격자 진술을 해줄 가족이나 지인을 미리 정해두고 장기간에 걸쳐 여러 번 비슷한 증상이 있는 것처럼 의료기관을 속이기도 했다.

◇“일부러 군대 가려 노력하는데”…환자들 허탈감

허위 뇌전증 진단을 알선하고 1억 원이 넘는 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병역 브로커 김 모씨2023.1.9. 뉴스1
허위 뇌전증 진단을 알선하고 1억 원이 넘는 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병역 브로커 김 모씨2023.1.9. 뉴스1
뇌전증 환자들은 병을 악용해 군 면제를 받은 범죄에 허탈감을 토로했다. 병역비리가 환자들을 향한 편견을 더할 것이란 우려도 높았다.

뇌전증 진단 5년이 넘은 환자 A씨는 “군대를 가지 않으면 취직이 어려우니 환자들은 일부러라도 현역 판정을 받으려고 한다”며 “그나마 최근 병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는데 이런 일을 벌였다니 기가 찬다”고 말했다.

입대 전 뇌전증 판정을 받은 B씨는 “최근 병역 비리 문제로 의사가 뇌전증 진단을 잘해주지 않는다”며 “제대로 진단을 받지 못한 채 운전이라도 했다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뇌전증은 사회적 편견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2014년 법령 용어가 간질에서 병명이 고쳐졌다. 지난 2015년 국제뇌전증협회(IBE)와 국제뇌전증퇴치연맹(ILAE)는 뇌전증 인식 개선을 위해 매년 2월 두 번째 월요일을 세계 뇌전증의 날로 지정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뇌전증 환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지원할 수 있는 관련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에선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2020년과 2021년 ‘뇌전증 관리 및 뇌전증 환자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지만 2년 가까이 계류된 상태다.

대한뇌전증학회 관계자는 “환자들은 병역 비리 사건으로 인한 부정적 평판이나 사회적 편견이 심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뇌전증 환자가 사회 구성원으로 설 수 있도록 격려와 지지를 보내달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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