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뇌병변장애 딸 살해 친모 집유에 ‘이례적 항소포기’

  • 동아닷컴
  • 입력 2023년 1월 27일 10시 40분


38년간 돌봤던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60대 모친에게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하자 검찰도 이례적으로 항소를 포기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인천지검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A 씨(64·여)의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았다.

형사사건의 항소 기간은 선고를 받은 다음 날부터 1주일이며 주말과 공휴일도 기간에 포함된다. 지난 19일 선고를 받은 A 씨 사건의 항소 기간은 지난 26일까지였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결심 공판에서 당시 검찰은 A 씨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일반적으로 구형량의 절반 이하의 형이 선고되면 항소를 진행한다. A 씨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검찰 자체 기준으로 본다면 항소해야 할 사건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A 씨가 장기간 힘들게 장애인 딸을 돌본 점 등을 고려해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지난해 5월 23일 오후 4시 30분경 인천 연수구 한 아파트 주거지에서 딸인 B 씨(38·여)에게 수면제를 먹여 살해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경찰조사 결과 B 씨는 난치성 뇌전증에 좌측 편마비가 있었고 지적장애까지 앓는 뇌 병변 1급 중증 장애인이었다. 의사소통도 힘들고 몸이 불편한 B 씨를 A 씨는 대소변까지 받아가며 극진히 보살핀 것도 확인됐다.

A 씨 아들이자 B 씨 남동생은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어머니는 다른 엄마들처럼 항상 누나 머리도 예쁘게 땋아주고 예쁜 옷만 입혀서 키웠다”며 “대소변 냄새가 날까 봐 깨끗하게 닦아 주는 일도 어머니가 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하기 4개월 전인 지난해 1월, B 씨는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다. A 씨의 아들은 “어머니는 누나가 대장암 진단을 받자 많이 힘들어했지만, 항암을 희망으로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했다”며 “혈소판 수치가 감소하면서 항암마저 중단했고 누나 몸에 멍이 들기 시작하면서 더는 돌파구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짐작했다.

이후 A 씨는 B 씨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자신도 수면제를 복용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그러나 집을 찾아온 아들에 의해 발견된 A 씨는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다.

검찰은 A 씨의 사정을 알았지만, 살인 혐의가 적용된 이상 중형을 구형하지 않을 수 없어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A 씨 아들은 “누나도 불쌍하고 엄마도 불쌍하다”며 “저와 아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이때까지 고생하고 망가진 몸을 치료해 주고 싶다”고 재판부에 선처를 부탁했다.

인천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류경진)는 19일 선고공판에서 실형이 아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장애로 인해 피고인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던 피해자는 한순간에 귀중한 생명을 잃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 의사는 고려되지 않았다”며 “아무리 어머니라고 해도 딸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피고인은 범행 이전까지 38년간 피해자를 돌봤고, 피해자의 장애 정도를 고려하면 많은 희생과 노력이 뒤따랐을 것”이라며 “그동안 피해자와 함께 지내면서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큰 죄책감 속에서 삶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선처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이 A 씨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국가의 지원 부족도 이번 사건 발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며 “오로지 피고인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집행유예가 선고된 이후 법정 밖으로 나온 A 씨는 소리 내며 오열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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