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 심리로 열린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 사건 67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관계사 천화동인 4호 소유주 남욱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반대신문에 나선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 측의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과 확정이익 방침, 건설사 배제 방침 등 대장동 사업 주요 사항은 모두 성남시가 정책적으로 결정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이 사건 피고인 중 남 변호사와 함께 민간업자로 묶을 수 있는 인물은 김 씨와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입니다. 김 씨는 이 사건 초기부터 대장동 사업은 성남시의 정책적 결정에 따라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라며 일부러 민간에 이익을 몰아줬다는 특경법상 배임 혐의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결과적으로 민간의 이익이 커졌을 뿐 사업은 정당하게 진행됐고 자신은 성남시의 방침을 따랐을 뿐이란 겁니다.
남 변호사는 이와 관계없이 2015년 공모지침서 작성 등 대장동 사업 추진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2014년 12월 본인은 이미 사업에서 배제됐었다는 주장으로 배임 혐의를 부인해왔습니다. 그런데 남 변호사는 최근 법정에서 대장동 사업의 주요 사항이 “이재명 시장의 의지에 따라 이뤄졌다”고 강조하며 이 대표의 역할을 누구보다 가장 크게 부각하고 나섰습니다.
●남욱 “우리는 사업 과정에서 계속 따라가고 끌려간 것”
9일 열린 69차 공판에서 남 변호사는 대장동 사업은 이 대표 측의 주도로 이 대표 개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됐고 본인을 포함한 대장동 일당은 “(이 대표에게) 끌려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사업이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됐다며 이 대표 측에 책임을 미룬 것이지만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김 씨와 정 회계사의 입장과 차이가 있습니다.
남 변호사는 “이 사건은 최초에 이재명이 (제1공단을) 공원으로 만들지 않으면 사업을 못 하게 하겠다고 해서 시작된 것”이라며 “그래서 본인 의사결정으로 (대장동 사업 수익을 높이기 위해) 용적률을 올려주고 터널을 뚫고 임대아파트를 줄여주고 그걸 가지고 결국 도지사 선거를 나갔고 원하는 걸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계속 따라갔다. 우리가 ‘이거 해 주세요. 저거 해 주세요’ 한 게 아니라 계속 끌려가면서 이 일이 진행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대표는 1공단 공원화를 공약으로 내세워 2010년 성남시장에 처음 당선됐고 2014년에는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이날 남 변호사는 대장동 부지 용적률 상향과 임대아파트 비율 축소, 서판교 터널 개통 등은 대장동 개발수익으로 1공단 공원화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이 대표가 결정한 것이라고 증언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이 대표가 1공단 공원화 의지가 있었던 것은 본인의 (성남시장) 재선을 위해 자신의 공약 이행이 중요해서가 아니냐”는 검찰의 질문에 “맞다. 그게 1번 공약이었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작성된 이 사건 검찰 공소사실은 결국 남 변호사 등 민간업자들의 요구가 ‘바텀-업’ 방식으로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사업 결정에 반영됐다는 구조입니다. 다만 그 ‘윗선’은 유동규 전 사장 직무대리 선에서 그칩니다. 최근 검찰은 민간업자들의 요구가 유 전 직무대리에서 더 올라가 이 대표까지 전달됐고 그 과정에서 9일 기소된 정진상 전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수감 중) 등이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남 변호사는 “유 전 직무대리가 중간에서 저희 입장을 계속 전달하는 역할을 한 건 맞다”고 했습니다.
남 변호사의 입장은 이처럼 ‘바텀-업’ 방식의 연결고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대표 측이 본인의 뜻대로 사업을 주도했다는 겁니다. 남 변호사는 “제가 계속 이 대표가 최종 결정한 거라고 말하는 이유는 결국 이재명이 원하는 대로 사업을 끌고 갔고, 그렇게 사업이 됐고, 나중에 (천화동인 1호) 지분까지 가져가지 않았느냐”며 “그래서 제가 계속 이재명의 의사대로 한 거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만배, 유동규 ‘망신’ 일화 언급하며 역할 축소
2일 열린 67차 공판에서는 석방 뒤 재판에 연이어 증인으로 출석한 남 변호사에 대한 김 씨 측 반대신문이 처음으로 진행됐습니다. 김 씨 측은 첫 질문부터 남 변호사 진술의 신빙성을 공격하고 나섰습니다. 김 씨 측은 남 변호사가 지난달 21일 0시 석방되기 불과 2시간 전인 20일 오후 10시경까지 남 변호사가 장시간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미리 증언 (내용을) 협의한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그런 사실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김 씨 측은 남 변호사가 검찰 조사 당시 진술한 유 전 직무대리가 망신당한 일화를 언급했습니다. 김 씨 측 변호인에 따르면 남 변호사는 검찰 조사 당시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18년경 성남시 국장들과 유동규, 정민용 변호사, 이재명 시장이 대장동 회의를 하는데 시장이 뭘 물어봤다고 한다. 그래서 유동규가 자리에서 일어났더니 이 시장이 ‘야 너는 앉아있어. 정 변호사가 얘기해봐’라고 했고 정민용이 설명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성남시 국장들이 ‘(직제상 하급자인) 정 변호사가 더 위인가 보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고 진술했습니다.
이에 대해 남 변호사는 “그렇게 진술한 게 맞다”면서 “정 변호사가 제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해서 기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 씨 측은 “만약 유 전 직무대리가 이 대표와 긴밀한 관계거나 신임받고 있었다면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설명할 기회를 줬을 건데 발언 기회조차 안 준 것 아니냐”면서 “이야기를 듣고 유 전 직무대리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지 않았느냐”고 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며 “어차피 유 전 직무대리는 개발사업 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그럴 수 있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김만배 “남욱, 소문이나 추측에 불과한 진술 너무 많이 해”
김 씨 측은 5일 열린 68차 공판과 9일 열린 69차 공판에서는 본격적으로 이 대표와 그 측근 그룹에 대한 폭로를 쏟아내고 있는 남 변호사 증언의 신빙성을 공격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최근 법정에서 천화동인 1호에 이 대표와 정 전 실장,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지분이 있고 2014, 2018년 이 대표의 성남시장 재선 선거와 경기도지사 선거 당시 선거자금을 지원했다는 등의 증언을 했습니다. 대부분 “김 씨에게 들은 이야기”라며 전하는 말이었습니다.김 씨 측은 69차 공판에서 천화동인 1호 ‘실소유주’ 의혹에 대해 “증언 취지를 종합하면 김만배, 정영학, 증인(남욱 변호사) 셋이 2015년 2월경 모였을 때 김 씨가 ‘자신의 지분은 12.5%밖에 안 되고, 나머지 37.4%는 이 시장 측 지분’이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라며 “정 회계사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하고 김 씨도 ‘그런 적 없다’고 한다. 그런데 유일하게 남 변호사만 기억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말씀하신 분(김만배)이 제일 잘 알리라 생각한다”고 맞섰습니다.
김 씨는 선거자금 지원 등 의혹과 관련해서도 여러 차례 “실제 돈이 지급됐는지는 알지 못하지 않느냐” “들은 말에 본인의 추측을 가미한 것 아니냐”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남 변호사의 증언이 전언이나 추측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소문이나 추측에 불과한 진술을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김 씨 측 질문에 “이 법정에서 한 진술은 김 씨에게 들은 얘기만 말씀드렸다”고 했습니다.
김 씨 측은 동시에 김 씨가 평소 말할 때 ‘허풍’이 심하다는 취지의 주장도 했습니다. 김 씨는 지난달 30일 열린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50억 뇌물수수’ 사건 결심 공판에서 직접 “제 허언과 잘못된 언어 습관으로 이 법정에 서게 돼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이름도 언급됐습니다. 김 씨 측은 9일 남 씨의 검찰 진술조서를 공개하면서 “증인은 검찰에서 ‘조선일보 기자와 통화했는데, 윤석열 밑에 있는 검사 중에 김만배한테 돈 받은 검사들이 워낙 많아서 이 사건은 수사를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너무 허황되고 근거 없지 않나”라고 지적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저는 그렇게 들었다”며 “김만배 본인도 그런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다 거짓말이란 말인가”라며 맞받았습니다.
●남욱 “씨알도 안 먹혀요” 인터뷰 두고 공방

김 씨 측은 “이 인터뷰는 거짓말이냐. 증인 주장대로면 ‘씨알이 많이 먹힌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남 변호사는 “워딩 자체는 사실이다. 이재명은 공식적으로 씨알도 안 먹힌다. 밑에 사람이 다 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씨 측이 “공식적 입장은 여전히 이재명은 씨알도 안 먹히는 사람이냐”고 묻자 남 변호사는 “공식적으로는 그렇다”면서 “배경 설명을 드릴 수 있는데 그럴까요”라고 했습니다. 김 씨 측은 “아니다. 됐다”라며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9일 69차 공판에서 검찰은 “김 씨 측 반대신문 과정에서 증인이 ‘배경을 설명해 드릴까요’라고 했었는데 그렇게 인터뷰하게 된 자세한 배경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남 변호사는 “당시 김 씨와 연락했는데, 김 씨가 ‘그래도 이재명 시장하고 한배를 탔는데 좀 고려해보라’는 취지의 얘기를 두세 차례 했다”며 “김 씨가 ‘유서를 쓰고 있다’는 얘기도 해서 당시 심리적으로 흔들렸다. 마침 귀국하는 길에 JTBC 기자가 (비행기에) 같이 탔길래 ‘씨알도 안 먹힌다’ 그렇게 말씀드린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답변하는 남 변호사를 가만히 바라보던 김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다음 공판은 16일 열립니다. 이날 재판에서는 이 사건 피고인인 정민용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장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됩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