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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르포]“퇴근길 작은 행복이었는데”…36년 만에 문 닫는 지하철 서점

입력 2022-12-09 20:18업데이트 2022-12-09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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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계약 종료, 재입찰 여부 불투명
단골 손님 등 “단순 서점 아닌, 사랑방 역할”
한우리문고 “지하철 내 문화공간 지키고파”
9일 서울 용산구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한우리문고에서 손님이 책을 구입하고 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크게보기9일 서울 용산구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한우리문고에서 손님이 책을 구입하고 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책이 있는 지하철’이라는 간판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9일 오전 11시 반 서울 용산구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6호선 환승구간에 있는 ‘한우리문고’ 점장 배정인 씨(42)가 서점 간판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간판 아래로는 세계문학전집 등 책 500여 권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 36년 만에 문 닫는 ‘지하철 서점’


서울교통공사가 이태원 핼로윈 참사 이후 지하철역의 혼잡도를 줄이기 위해 ‘지하철 서점’을 이날까지 운영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서점을 찾은 시민들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직장인 조모 씨(23)는 “오늘이 마지막 영업인지 모르고 왔는데 사라진다고 하니 너무 아쉽다”며 “평소 지하철을 이용하며 서점을 둘러보는 일이 작은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전국진 씨(50)도 “바쁠 때는 서점에 갈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 지하철 서점을 애용했는데 무척 아쉽다”고 했다. 폐점 소식에 놀라 서점을 찾았다는 직장인 김민정 씨(30)는 “퇴근길 지하철 서점에 들러 책 구경하는 게 소소한 행복이었는데, 서점이 없어지면 퇴근길이 퇴근길 같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지하철역 혼잡도를 줄이기 위해 서점을 없앴다는 서울교통공사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왔다. 대학생 홍은혜 씨(21)는 “등하굣길 주 2회 정도는 이곳을 찾는데, 서점 앞 공간이 넓어 혼잡 구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왜 서점이 사라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김기훈 씨(73)도 “이태원 참사는 무척 안타깝지만, 그로 인해 지하철 서점을 없앤다는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는데 왜 없애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8일과 9일 점검한 결과 한우리문고 연신내점, 삼각지점 앞은 6~8m가량의 보행로가 확보돼 있었고, 퇴근 시간에도 크게 혼잡하지는 않았다. 한우리문고 관계자는 “그동안 서점이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민원도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9일 서울 지하철 3·6호선 연신내역 한우리문고를 찾은 손님들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여파로 역 내 혼잡도를 줄이기 위해 36년간 이어졌던 서점 운영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크게보기9일 서울 지하철 3·6호선 연신내역 한우리문고를 찾은 손님들이 책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여파로 역 내 혼잡도를 줄이기 위해 36년간 이어졌던 서점 운영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 사랑방, 길 안내 역할도…“단순 서점 아냐”


1986년 지하철역 100여 곳에서 운영을 시작한 지하철 서점은 경영난 등으로 하나둘씩 문을 닫아 현재는 공덕, 종로3가, 약수, 연신내, 삼각지, 태릉, 왕십리 등 7곳만 남았다. 그러나 한우리문고에 따르면 서점 7곳에서 책을 산 사람은 한 달 평균 5000명이 넘고, 단순히 책을 둘러보는 시민들까지 합하면 매달 평균 1만5000명 정도가 방문했다고 한다.

이용자가 많다 보니 서점 운영중단 위기 소식에 특히 아쉬움을 토로하는 단골도 적지 않다. 15년 동안 서점을 이용했다는 김영순 씨(58)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시집 등을 사곤 했는데 이곳이 사라진다면 역에 올 때마다 기운이 빠질 것 같다”고 했다. 평일에 거의 매일 방문했다는 박연정 씨(73)도 “서점 간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차를 마시다 친해진 단골들이 많다. 단골끼리 반찬도 나눠 먹을 정도”라며 “우리에겐 단순한 서점이 아닌 ‘사랑방’ 같은 존재라 사라지면 우울증이 올 것만 같다”고 아쉬워했다.

연신내점 점장 양수진 씨(58)는 “멀리 경기 구리에서 이곳 서점을 찾는 단골도 있다“며 ”차마 운영 종료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우리문고 연선내점 단골손님 박연정 씨가 자신이 구입한 책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크게보기한우리문고 연선내점 단골손님 박연정 씨가 자신이 구입한 책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시민들은 지하철 서점이 ‘소통의 공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배 점장은 “역 출구가 많다 보니 하루에도 20명의 승객이 길을 묻는다”며 “길 안내뿐 아니라 치매 노인, 복통을 호소하는 학생 등 갑작스레 도움이 필요한 승객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역무원을 불러오는 등의 일도 종종 있다. 단순 서점이 아닌, 소통의 공간인 것”이라고 말했다.

● “지하철 내 문화공간 지킬 수 있었으면”


9일 위탁운영 계약이 종료된 한우리문고는 15일까지 모든 점포를 정리할 계획이다. 엄철호 한우리문고 대표는 “36년간 지하철 서점을 운영하며 수익보다는 승객들의 지하철 내 문화공간으로서의 자부심이 컸다”며 “일본 등 선진국은 주요 역사마다 서점이 있다. 우리나라도 지하철 내 문화공간을 지킬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서점이 계속 운영되길 바라는 요구가 있는 만큼 재입찰을 통해 서점 운영을 재개할지 여부를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전혜진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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