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경찰·보호관찰소도 ‘중곡동 주부 살인’ 잘못 있어”

  • 뉴시스
  • 입력 2022년 7월 14일 11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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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일어난 ‘중곡동 주부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경찰과 보호관찰당국의 책임이 인정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전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범인이 부착하고 있던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의 정보를 확인했다면 잇달아 범행을 저지르는 걸 막을 수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재범위험성이 높은 범인을 적극 감시하지 않은 보호관찰당국의 책임도 인정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4일 오전 A씨 등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 등은 ‘중곡동 주부 살인사건’ 피해자 B(당시 37세)씨의 유가족이다. B씨는 2012년 8월20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자택에서 서진환에 살해됐다. 서진환은 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져 2013년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그런데 서진환은 이 사건에 앞서 여러 차례 성폭행 등 혐의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

서진환은 2004년 피해자를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하고 돈을 빼앗은 혐의로 기소돼 같은 해 8월 징역 7년을 확정받았다. 이후 서진환은 2011년 8월 출소해 전자발찌를 부착한 상태에서 B씨를 살해한 것이다.

이를 두고 유족 A씨 등은 정부가 서진환의 범행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서진환은 B씨를 살해하기 전인 2012년 8월7일 성폭행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만약 경찰이 범행 장소에 전자발찌 부착자가 있었는지 확인했다면 서진환을 빨리 검거해 추가 범행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족 측은 서진환의 출소 이후 그의 거주지를 관할하던 경찰이 재범을 예방하기 위해 관련 규칙에 따른 첩보수집 대상자로 분류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1심은 경찰의 잘못과 B씨가 살해된 범행 간 인과관계가 부족한 것으로 봤다.

경찰이 전자발찌에 관한 위치정보를 수사에 활용하진 않았지만, CCTV 등을 통해 다른 기초수사를 충실히 했다는 이유에서다. 1심은 첩보수집에 관한 규칙은 경찰청 내부 규정에 불과한 점, 당시 관할 경찰서에 인력이 부족했던 점 등을 이유로 유족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항소심 과정에서 유족 측은 보호관찰소의 책임도 있다고 주장했다.

서진환의 재범 위험성 평가는 당시 서울보호관찰소 관내에서 9위에 해당했는데, 관련 규정에 따라 전담 보호관찰관이 월 3회 이상 대면접촉하고 이동경로 등 일일감독 소견을 시스템에 입력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호관찰소가 불시에 전자발찌 부착자를 방문하기 위한 단말기를 구입하고도 적극 활용하지 않은 점,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였음에도 치료받게 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등을 문제 삼았다.

2심도 경찰이나 보호관찰소가 법령을 위반한 건 아니라고 판결했다.

수사는 경찰의 전문적 판단에 따라 재량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전자발찌 부착자의 위치정보를 활용해야 한다는 지침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전자발찌에 관한 법령이 시행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는데, 위치정보를 수사에 활용한 사례도 극히 드물었다고 했다.

보호관찰소의 경우에도 범행이 있기 전 달에는 서진환에 대한 대면접촉이 충실히 이뤄졌고, 범행 직전에는 서진환이 잠이 들어 면담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또 일일감독 소견에 관한 건 법무부 내부 지침일 뿐이며, 단말기 활용에 관한 명시적 규정이 없었다고 했다. 서진환이 특별히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인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경찰과 보호관찰소가 직무상 의무를 다하지 않아 범행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우선 재판부는 경찰이 범행 장소 인근에 전자발찌 부착자가 있는지 위치정보를 확인해 수사에 적극 활용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전자발찌에 관한 법령은 재범 위험성이 높은 성범죄자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범행이 일어나기 4년 전부터 시행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전자발찌 위치정보 확인이 당시 일반적인 수사기법이 아니었다고 해서 경찰의 조치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법령은 이미 경찰에 전자발찌 위치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상태이므로 이를 적극 활용해 조치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 밖에 당시 서진환의 성폭행 수법이 흉악했으므로 경찰은 DNA 감정에 의지하기보단 신속한 검거를 위한 다른 방법을 강구했어야 했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제시됐다.

보호관찰소의 경우에는 재범위험성이 높은 서진환을 적극 지도·감독하지 않아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서진환은 전담 보호관찰관의 대면접촉이 이뤄지지 않던 기간과 불과 13일의 시차를 두고 범행을 연달아 저질렀다는 이유에서다. 그가 반사회적 경향을 보인 이후 한 달 넘게 대면접촉을 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거론됐다.

재판부는 “경찰관이 직무상 의무를 다해 전자장치 위치정보를 조회했다면 신속히 서진환을 수사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다”며 “서진환이 전자장치를 통해 감시되고 있음을 인식했다면 범행을 연달아 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보호관찰관이 수시로 대면접촉 등을 통해 서진환을 지도·감독했다면 함부로 재범에 나아갈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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