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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진짜와 가짜[고양이 눈썹]

입력 2022-06-25 13:20업데이트 2022-06-2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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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한 벤처기업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수 년 동안 연구개발에 매진한 끝에 개발한 제품으로 드디어 쏠쏠한 재미를 보는가 했더니 ‘짝퉁’이 빠르게 유통됐다고 합니다. 임직원들이 모여 비상회의를 하는데 정작 대표는 흐뭇한 표정으로 듣기만 하더니 “짝퉁은 우리 제품이 명품으로 인정받았다는 증거다”라며 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거북선표 고무신 .사진출처 미상


▽“경고! 가짜 거북선표가 많사오니 속지 마시고 거북선표를 사실 때에는 아래 그림과 같이 거북선 상표 물결 바닥을 사십시오.”

일제 강점기 시절 1931년 신문에 등장한 고무신 광고 문안. 거북선을 상표로 써서 조선인 소비자의 민족주의 감성을 자극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가짜 거북선표가 등장했고, 서울고무공사는 가짜를 조심하라는 광고를 냈습니다. 아마도 이 광고에는 거북선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는 의도도 숨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에도 이미 짝퉁을 활용한 마케팅을 이해하고 있었네요.

▽짝퉁은 진품의 가치를 올려줍니다. 그런데 짝퉁들이 연이어 나오다보면 언젠가는 진품보다 뛰어난 짝퉁들이 튀어나옵니다. 복제가 청출어람 혁신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진품들도 끊임없이 업데이트 된 버전 제품들을 내놓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워낙 많다보니, 진짜인데도 가짜로 의심하게 하는 상황입니다. 가짜에겐 진짜도 가짜로 만드는 권력이 있습니다.

2018년 말 아프리카 가봉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가봉 국민들은 알리 봉고 대통령이 두어 달 가량 공개석상에 나오지 않자 유고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이미 사망했다는 괴소문도 돌았죠. 정부는 “대통령이 타박상으로 치료 중(사실은 뇌졸중)이지만 건강하다”고 발표했지만 의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죠. 이에 봉고 대통령은 관례대로 2019년 새해 연설을 하는 영상을 공개합니다.

알리 봉고 가봉 대통령 2019년 새해 연설 유튜브 영상 캡쳐
딥페이크라고 의심 받은 눈 모습


의혹이 사그라지기는커녕 더 심각해졌습니다. 초점이 없는 듯한 오른쪽 눈을 근거로 딥페이크 영상이라는 의심 여론이 커진 것이죠.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며칠 뒤 일부 군대가 쿠테타를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이들은 비디오가 쿠데타를 하게 된 동기의 일부라고 발표했죠. 각국 영상분석가들이 면밀히 살펴보았지만 조작의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진짜였던 것이죠. 가짜뉴스의 후유증도 심각하지만, 진짜를 가짜라고 몰아붙이는 분위기가 더 큰 위기를 불러 온 것이죠. 딥페이크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가 가짜일 수 있다는 의심입니다.

딥페이크 기술이 발달하는 만큼, 가짜 여부를 판단할 기술도 향상되지만, 의심하고 가짜로 몰아붙이는 데는 딱히 공학적 기술이 필요 없습니다. 가짜라고 우기면 되니까요. 말 몇마디로 진짜마저 가짜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이죠. 의도적으로 진실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진짜의 증거를 내밀면 다시 증거도 가짜라고 우기고…. 진짜임을 증명하기는 어려워도, 가짜라고 우기기는 너무 쉽죠. 아우슈비츠의 가짜 가스구멍, 달 착륙 조작설은 이래서 끊임없이 반복 재생됩니다.

저희도 신문을 제작하며 CCTV, 블랙박스 그리고 소셜미디어의 영상을 많이 수집합니다. 인터넷에 기정사실로 돌아다니는 사진이라도 진위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합니다. 저희가 직접 취재하는 일보다 이런 사진들의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게 더 고달프기도 합니다.

2022년 5월
진짜 자작나무와 가짜 자작나무를 찾아보시죠. / 2021년 11월 서울 성북구 성북동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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