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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고양이 눈썹

‘집단적 뇌’…지식의 교류와 축적 [고양이 눈썹]

입력 2022-06-18 10:00업데이트 2022-06-1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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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아무리 천재라 해도 한 사람의 뇌로 이런 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수로 구성된 무리도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생각해낼 수는 없다. 대륙, 기후대, 지역을 막론하고 모든 조난자의 사정이 그렇다. 헨릭의 ‘백인 탐험가의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난파자들 중 원주민들과 연결되어 그들에게서 생존법을 배웠던 사람들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저 목숨만 부지하는 데도 문화에 축적된 아이디어와 지식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인류학자 헨릭은 인간은 ‘집단적 뇌’ 덕분에 생존 가능하다고 말한다.”

- 과학 작가 슈테판 클라인의 책 ‘창조적 사고의 놀라운 역사’ (2021년)

(‘복제(copy), 창작의 시작’ 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지난 회 참조 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20611/113890341/1)

▽복제는 문명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복제는 표절이 아니냐는 의심이죠. 물론 둘은 아슬아슬한 관계입니다. 베껴놓고 창작이라 우기면 표절이죠. 아시다시피 표절은 도둑질이고 범죄행위입니다. 하지만 모든 복제를 표절이라고 하면 문명은 탄생하지 못했겠죠. 따라하지 못하면 완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는 애초부터 탄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자동차를 만드는데 바퀴 4개와 스티어링 휠 등을 쓰지 말고 완벽한 새로운 버전으로 설계해야 한다면 애를 먹겠죠. 분야에 따라 저작권을 느슨하게 정해두는 이유입니다. 대신 타인의 고유한 지적재산을 빌려 쓸 경우 출처를 명확히 밝히거나 로열티 등 값을 치러야 합니다.

2020년 3월

▽‘집단적 뇌’는 배움과 복제, 표절과 공유 등이 얽히고 섞여 운영되는 체계입니다. 슈테판 클라인은 인간만의 ‘창조적 사고’의 원천은 단순히 ‘커다란 뇌’가 아니라 소통과 교류를 통한 창조성의 축적이 선순환을 일으켜서라고 봅니다. “문화 속에 녹아든 타인의 경험을 알고 그 토대 위에서 생각하는 사람만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가지며 “집단적 뇌에 축적된 지식은 아이디어를 빚는 재료”라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 “어디를 가나 고수는 꼭 있다”는 경구는 이러한 인류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겠죠.

학교나 직장에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상승작용을 일으킵니다. 혼자만의 아이디어로는 부족합니다. 타인과 상호 교류하며 공유해야 아이디어는 창의력으로 폭발합니다.

소수 권력자가 독점하던 ‘지식’이 구텐베르크 인쇄술 발명 후 대중화된 이후 지식의 상징, 즉 책이 모인 도서관은 아날로그 시절을 풍미하던 ‘집단적 뇌’였죠. 지금은 아시다시피 전세계인의 두뇌가 랜선 디지털로 연결됐습니다. 인공지능도 가세합니다.

‘사건 지평선 망원경(EHT·Event Horizon Telescope)’ 국제공동연구팀이 지난 5월 처음 발표한 우리은하 중심부 초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 A 이미지. 한국천문연구원을 포함해 미국, 유럽, 일본,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80개 기관 300명이 넘는 연구진으로 구성된 ‘집단’의 성과입니다. EHT는 스페인과 미국, 남극, 칠레, 그린란드 등 전 세계 8개 전파망원경을 ‘연결’해 지구 크기의 가상 망원경을 구현했습니다. 전파망원경이 동시에 천체를 관측하면 하나의 거대한 망원경으로 본 것처럼 해상도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전세계 천문학자들의 집단적 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사건이었습니다.


2020년 말 공개됐지만, 혐오·비하 발언 문제로 서비스가 중단된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 ‘이루다’ 캐릭터

▽하지만 과연 디지털 시대의 집단적 뇌는 ‘집단지성’으로 이어질까요? ‘집단적 뇌’인 디지털 세계에서 왜 여전히 혐오, 차별, 광기, 가짜뉴스, 욕설과 비하, 비아냥이 횡행하는 것일까요. 단순한 부작용이면 다행일텐데, 과연 인류가 진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과연 이러한 것들도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일까요.

2019년 8월

2018년 12월 서울 종로구 사직동


신원건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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