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까지 번진 시뻘건 불길…소화전 5개가 양구 전원마을 살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11일 1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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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소방호스 연결해 산불 방어 총력
인접 산 탔지만 7시간 사투로 피해 막아

10일 오후 강원 양구군청 공무원들이 양구읍 송청리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민가로 내려오는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2022.04.10. 사진 뉴시스
10일 오후 강원 양구군청 공무원들이 양구읍 송청리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민가로 내려오는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2022.04.10. 사진 뉴시스

강원 양구 산불이 전원주택 단지까지 접근했지만 주민들이 소화전을 활용하며 신속하게 대처하며 대형 피해를 막은 것으로 확인됐다.

강원 양구 산불 이틀째인 11일 오전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청우리 전원마을에서 한 주민이 소화전에 연결된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다. 양구=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강원 양구 산불 이틀째인 11일 오전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청우리 전원마을에서 한 주민이 소화전에 연결된 소방호스로 물을 뿌리고 있다. 양구=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10일 오후 3시 40분경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송청리에서 발생한 산불은 초속 10m 가량의 바람을 타고 인접한 국토정중앙면까지 확산됐다. 비봉산 자락 아래에 위치한 청우리 전원마을 주민들도 산불 소식을 듣고 불길을 막기 위해 나섰다. 이 마을에는 31세대 9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오후 4시경 주민들을 통해 산불 소식을 접한 임태구 청우리 이장(74)은 산불이 마을까지 확산될 것에 대비해 노약자와 여성들을 긴급히 대피시키고 주민들과 함께 방어망 구축에 나섰다. 임 이장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고 불줄기가 금방이라도 마을로 들이닥칠 것 같은 상황이었다”며 “누가 뭐라 할 새 없이 마을 주민 15명 정도가 방어망 구축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11일 강원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산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산불 2일째인 이날 짙은 연무로 헬기 투입이 지연되면서 소방당국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양구=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11일 강원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산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산불 2일째인 이날 짙은 연무로 헬기 투입이 지연되면서 소방당국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양구=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쉬는 날임에도 산불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양구소방서 소속 황인용 소방장(40)의 역할이 컸다. 황 소방장은 이 마을에 사는 친구가 걱정돼 찾아왔다가 주민들과 함께 불길 확산을 막기 위해 나섰다.

황 소방장은 마을 방송을 통해 문을 꼭 닫을 것과 가스를 차단하고 쓰레기 등 탈 거리를 밖에 두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어 소화전 연결이 서투른 주민들과 함께 소화전에 소방호스를 연결했다. 소방호스 물을 조절하는 관창과 호스가 부족한 걸 파악하고 양구소방서에 달려가 장비를 구해오기도 했다. 다른 대원들은 모두 산불 현장에 투입된 상황이었다.

황 소방장과 주민들은 소화전 5개에 연결한 소방호스로 산과 가까운 집에 집중적으로 물을 뿌렸다. 산불이 계속 번지고 있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쉬지 않고 교대로 소방호스를 잡았다. 오후 9시경 마을 바로 코앞까지 산불이 번지자 주민들은 소방호스 5개를 동시에 풀가동했다. 마을 바로 앞산의 나무들이 대부분이 탈 정도로 산불이 가까이 왔지만 마을 주택은 어떤 피해도 없었다. 오후 내내 뿌려둔 물이 큰 도움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11일 오전 강원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전광판이 산불 발생을 알리고 있다. 전광판 뒤 짙은 연무로 하늘이 뿌옇다. 양구=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11일 오전 강원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전광판이 산불 발생을 알리고 있다. 전광판 뒤 짙은 연무로 하늘이 뿌옇다. 양구=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황 소방장은 오후 9시 산불 3단계가 발령되면서 마을을 떠나 복귀했지만 주민들의 사투는 이어졌다. 11일 오전 1시경까지 계속 물을 뿌렸고, 산불이 지나간 후에도 감시를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소방안전관리사 2급으로 진화에 참여했던 주민 황우남 씨(67)는 “소화전과 주민들의 신속한 대처가 없었다면 정말 아찔한 상황이 전개됐을 것”이라며 “5년 전 산불을 겪은 터라 주민들이 산불 대응 요령을 잘 숙지하고 있어 비교적 잘 대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 소방장은 “내가 아닌 다른 소방관이더라도 유사한 상황이라면 저처럼 행동했을 것”이라며 “아직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마을이 피해를 입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밝혔다.

양구=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양구=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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