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으로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을 살해한 피의자 김병찬이 지난해 11월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을 스토킹한 끝에 살해한 김병찬 (35)의 피해 유족이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호소했다.
피해자의 아버지인 A 씨와 어머니 B 씨는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정진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병찬의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보복살인 등) 혐의 사건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A 씨는 “모든 가정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저희도 죽임을 당한 거나 마찬가지”라며 “피고인으로부터 용서를 구한다는 취지의 연락도 전혀 온 적이 없다”고 엄벌을 촉구했다.
그는 “얼마 전 딸의 생일이었는데 저 살인마가 법에 의해 심판을 받게 해서 평생 감옥에서 참회하며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며 “(김병찬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매일 생각하며 준비한 도구가 고작 이 종잇조각(호소문) 뿐이었다”고 말했다.
A 씨는 “재판장이 사형을 선고한다고 해도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단지 종신형을 선고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하면 어떻게든 가석방으로 풀려날 생각을 할 것이다. 희망고문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사형을 선고해 줄 것을 요청했다.
B 씨는 “사건 이후 남은 가족 모두가 정신과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묻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딸이 세상을 떠난 지도 모르고 중매가 들어오면 가슴이 멘다. 종교에 매달려 보고 좋은 말씀을 들어봐도 슬픔은 가시지 않는다”며 “슬퍼하면 딸이 좋은 곳에 가지 못할까 봐 맘 놓고 울지도 못한다”고 호소했다.
B 씨는 ‘평소 딸은 어떤 자녀였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오늘도 죽은 딸이 사준 신발을 신고 왔다”며 발을 구르며 오열했다. 딸을 향해서는 “엄마 딸이어서 고맙다. 너와 함께한 세월이 고맙다.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긴 시간 유족들의 호소를 경청한 재판장은 재판 끝에 “유족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 같다. 건강 잘 추스르시기를 바란다”며 위로를 건넸다.
스토킹으로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을 살해한 피의자 김병찬이 29일 오전 검찰 송치를 위해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2021.11.29/뉴스1
수의를 입고 출석한 김병찬은 증언 내내 피고인석에서 두 눈을 감은 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김병찬은 지난해 11월 19일 서울 중구 한 오피스텔에서 30대 여성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피해자는 김병찬을 스토킹 범죄로 네 차례 신고해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던 중이었고 김병찬은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등 잠정 조치를 받은 상태였다.
김병찬은 첫 재판에서 피해자를 살해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범행이 우발적이었다며 보복성은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이 휴대전화 등 디지털 포렌식 과정을 통해 조사한 결과 김병찬이 범행방법과 도구 등을 검색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오는 4월 11일 김병찬의 세 번째 공판을 연다.
두가온 동아닷컴 기자 gggah@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