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출범 1년만에 ‘항로 변경’?…존폐 위기감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1일 20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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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공식 출범일인 지난해 1월 21일 경기 정부과천청사에 걸린 공수처 현판. 사진공동취재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공식 출범일인 지난해 1월 21일 경기 정부과천청사에 걸린 공수처 현판.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 1년여 만에 ‘항로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부터 대수술을 예고했던 만큼 공수처의 위상과 권한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윤 당선인이 지난달 14일 사법공약 발표를 통해 “문제점이 계속 드러나고 계선되지 않으면 공수처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공수처 내부에선 “존폐의 기로에 놓일 수도 있다”는 위기감까지 감지되고 있다.

● 바람 앞의 촛불이 된 공수처

11일 공수처 안팎에선 “향후 사실상 ‘식물 공수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공수처를) 진정한 수사기관으로 환골탈태 시키겠다”고 약속했고, 국민의힘은 대선 공약집을 통해 “공수처의 우월적, 독점적 지위 규정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공수처법은 검찰 등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를 인지했을 경우 공수처에 알리고, 공수처장 요청에 따라 사건을 넘기도록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런 조항을 공수처법의 ‘독소 조항’으로 규정짓고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를 두고 공수처 내부에선 “유명무실한 조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공약이 현실화되면 부패수사 경험이 많고 대규모 인력을 보유한 검찰이 고위공직자범죄 수사를 주도하게 되고, 공수처는 개점휴업 상태가 될 수도 있어서다. 윤 당선인의 공약과 관련해 공수처는 극도로 말을 아끼면서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선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 사정에 밝은 한 법조인은 “지금 공수처는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상황”이라며 “조직은 유지되겠지만 실질적 권한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새 정부에서 공수처의 권한을 축소하거나 공수처 자체를 폐지하는 방안이 조기에 현실화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172석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동의하지 않는 한 공수처법 개정은 불가능하다.

다만 윤 당선인이 직접 검찰의 직접 수사권한을 넓힐 가능성은 있다. 현재 6대 범죄(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범죄)로 제한된 검찰의 직접 수사권한은 정부가 시행령만 개정하면 확대할 수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수처가 검찰과 권력 수사를 두고 경쟁한다면 사실상 제 역할을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공수처는 독점적 수사 권한이 있음에도 채용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권한 축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수 인재가 공수처에 지원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 尹 겨냥 수사도 ‘올 스톱’ 될 듯

공수처가 지난해부터 윤 당선인을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해 온 ‘고발 사주’ 의혹, ‘법관 사찰 문건 작성 지시’ 의혹, ‘옵티머스 펀드 사기 부실 수사’ 의혹 등 3가지 사건은 수사가 중단될 것으로 관측된다. 현직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내란, 외환죄가 아니면 기소되지 않는 불소추 특권을 갖는다. 다만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선 공수처가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쪽으로 수사를 종결할 가능성도 있다.

한편 공수처는 11일 ‘스폰서 검사’로 불렸던 김형준 전 부장검사를 뇌물수수 혐의로, 김 전 부장검사에 금품 등을 제공한 박모 변호사를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공수처의 첫 기소 사례다. 김 전 부장검사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던 박 변호사로부터 1100만 원 어치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뒤 무혐의 처분 과정에 관여한 혐의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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