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령군이 마을을 포위하고 지인의 집을 지휘소로 사용하기 위해 가족들을 모두 내쫓았습니다. 저도 불필요한 저항을 하지 않으려고 무장을 해제했습니다.”
지난 3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헤르손을 점령하자 박희관 씨(37)가 대피한 지하 벙커에는 더 짙은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손에서 놓지 못했던 차가운 총도 어쩔 수 없이 내려놓아야만 했다. 러시아군과 맞닥뜨렸을 때 총을 가지고 있으면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헤르손 내 개인 벙커에 머물고 있는 박씨는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7일까지 메신저와 전화를 통해 뉴스1에 소식을 전해왔다. 지난 3일 러시아군이 헤르손을 점령하면서 전쟁은 더 가까이서 그를 위협하고 있다. 뉴스1은 박씨가 전쟁터 한가운데서 틈틈이 보내온 생의 기록을 글과 사진으로 정리했다.
박씨는 “전차부대가 시내를 점령했을 때 제가 머무는 곳도 사정권에 들어 긴장했다”며 “지금도 멀리서 포성이 계속 들린다. 강 건너에서 계속 무언가를 쏴대 제 농장이 큰 타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우크라이나인 아내와 박씨가 운영하는 농장 직원들까지 모두 11명과 함께 지하 벙커에 머물고 있다. 벙커는 처가에서 전시를 대비해 미리 만들어둔 시설로, 집과는 5분가량 떨어져 있다. 박씨가 농장 직원들의 가족들까지도 직접 불러 모아 함께 생활 중이다.
그는 “초등학생 때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용돈을 주시며 ‘너보다 더 힘든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사먹고, 학용품을 안 가져온 친구들이 있으면 꼭 사서 나눠쓰라’고 하셨다”며 “우리집엔 내가 없어도 친구들이 놀러와 어머니가 차려주신 음식으로 굶주린 배를 채우는 친구들도 있었다. 부모님이 제게 가르쳐주신 건 지금 이런 전쟁 같은 삶을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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