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학원 수강비 내려고”…‘고스펙’ 위해 아르바이트하는 청년들

송혜미기자 , 전혜진 인턴기자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입력 2021-10-26 21:07수정 2021-10-26 21:19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7일 오후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청년드림 JOB콘서트‘를 찾은 청년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올해로 14회째를 맞는 이번 일자리 박람회에서는 분야별 현직 직업인과의 멘토링과 취업 컨설팅 등이 준비됐다. 2021.10.7/뉴스1
3년째 웹 디자이너 취업을 준비하는 A 씨(27)는 올 2월부터 디자인 취업 전문학원에 다니고 있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학원만으로 부족하다고 느껴 그룹과외 수업도 추가로 듣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취업 학원과 과외에 쓴 돈은 120만 원 남짓. 학원비를 내려고 단기 아르바이트도 뛰고 있다. A 씨는 “대기업에 입사하려면 여전히 ‘스펙’이 압도적으로 좋아야 한다”며 “취업 학원 수강은 사실상 필수”라고 전했다.

취업난에 부담 커지는 구직자들
최근 청년 구직자들은 갈수록 더 많은 돈을 취업 준비에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동아일보와 취업정보 사이트 진학사 캐치가 20, 30대 취업준비생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1년 이상 취업을 준비한 구직자 63%가 “지난해보다 올해 취업준비 비용이 늘었다”고 답했다.

청년 구직자가 한 달 동안 쓰는 취업준비 비용은 월 평균 35만 원. 생활비나 교통비를 제외하고 학원비, 교재비, 스터디룸 이용료 등에 지출하는 금액이다. 이중 한 달에 100만 원 이상 지출한다고 응답한 구직자도 43명이나 됐다. 가장 많은 금액을 지출하는 청년은 한 달에 225만 원을 쓴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을 퇴사하고 개발자로 재취업을 준비하는 양모 씨(31)는 올해 3개월 과정의 실무형 코딩 학원(부트캠프)에 참여했다. 비용은 한 달에 200만 원씩 총 600만 원. 양 씨는 “취업을 다시 준비하려니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며 “그나마 개발자가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아 모아둔 돈을 털어 고액 부트캠프를 다니는 중”이라고 말했다.

주요기사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김모 씨(25)도 최근 응시료 100만 원을 내고 금융자격증을 땄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듣고 교재를 사느라 총 200만 원 가량 비용이 들었다. 김 씨는 “나는 자격증을 1개 땄지만, 요즘에는 자격증 2, 3개씩은 준비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취업시장 문은 더 바늘구멍이 되고 있다”며 “어떤 스펙을 더 쌓아야 하는지, 취업 준비 과정이 끝나기는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현재 두 번째 채용연계형 인턴을 하고 있다.

취업준비 비용을 스스로 해결하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더 치열해지는 취업경쟁이 막막하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배모 씨(26)는 “취업준비를 하며 학원에 다니느라 카페와 스터디룸에서 주 5일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집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편하게 준비를 하는데, 나만 이렇게 힘들다는 생각에 박탈감이 들 때도 많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8월 대학을 졸업한 배 씨는 “취업난이 심하다보니 지원해봤자 떨어질 것 같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입사 서류를 넣어본 적이 없다. 청년구직자의 44.7%는 배 씨처럼 아르바이트를 통해 취업준비 비용을 마련한다고 답했다.

좁은 취업문에 더 치열해진 경쟁
청년 구직자들이 개인비용을 더 많이 들여가며 취업 준비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양질의 청년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실이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달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20, 30대 ‘초단시간 근로자’가 35만2000명에 달했다. 9월만 놓고 보면 역대 가장 많다. 주 15시간 미만 일자리는 주휴수당조차 받을 수 없어 ‘질 나쁜 일자리’로 분류되는데도 청년들이 몰리는 것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대기업 채용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달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67.8%가 하반기(7~12월) 신규채용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1년 전보다 최근 취업 준비에 더 많은 돈을 쓴다는 청년 중 58.6%가 “내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취업 지출을 늘렸다고 답했다. ‘기업이 사람을 적게 뽑기 때문’(51.4%)이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공개채용 대신 수시채용이 확대되는 흐름도 최근 취업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채용인원이 더 적은데다, 요구하는 스펙 역시 공채에 비해 높아서다. 1년 반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재영 씨(25)는 “문과직렬을 뽑으면서 정보기술(IT) 관련 자격증을 요구하는 기업도 많다”며 “취업준비생들은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자격증을 따고, 스펙 경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취업준비를 하며 총 9번의 면접에서 모두 떨어졌다는 이 씨는 올 8월에 정보기술(IT) 자격증을 2개 취득했다. 그는 대학에서 사회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IT 비전공자로, 마케팅 직무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개발자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정모 씨(25) 역시 “수시채용 이후 취업 준비가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채를 통해 취업한 친구들은 2, 3개의 프로젝트로도 충분히 취업이 됐는데, 수시채용에서는 4, 5개씩 프로젝트를 분위기”라며 “아무리 포트폴리오를 쌓아도 취업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정 씨는 “이렇게 스펙을 쌓는 데 돈이 많이 들다보니 취준생 사이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아예 구직을 단념하는 청년도 늘고 있다. 지난달 20, 30대 구직단념자는 30만5000명에 달했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전혜진 인턴기자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