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서점-잔디광장… 시민 위해 다시 태어난 ‘도심속 작은 섬’

박창규 기자 입력 2020-10-22 03:00수정 2020-11-1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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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혁신, 공간복지]<1> 서울 용산구 ‘노들섬’
크게보기노들섬에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간이 마련돼 있다. 서점 ‘노들서가’에는 책에 담긴 에피소드와 철학 등을 소개하는 판매대가 있고 조용히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도 있다.(왼쪽 사진) 체험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미술도구 중 하나인 오일파스텔을 활용해 미술 작품을 만들고 있다.(가운데) 한강변의 넓은 잔디밭에는 돗자리를 깔거나 벤치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시민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사는 곳과 가까운 거리에 도서관이나 공연장, 체육관 등 주민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이 충분하다면 삶의 질은 한층 좋아질 것이다. 이러한 공간이 주는 혜택이 바로 공간복지다.

최근 우리 주위에서 공간복지를 활용한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과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우리의 생활을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공간복지의 현장을 소개한다.》

노들섬은 한강의 한가운데 있는 섬이다. 1960년대 말까지도 이곳은 서울 용산과 이어진 넓은 백사장이었다. 여름이면 물놀이를 하고 겨울이면 스케이트를 타던 추억의 장소다. 1968년 한강 개발이 시작되자 이곳의 모래를 채취하면서 노들섬은 하중도(河中島)가 됐다.

18일 방문한 노들섬에는 가을 정취를 만끽하며 휴일 오후를 보내려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부부, 킥보드를 타는 아이, 자전거를 타는 연인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방문자 대다수는 인근 용산구나 동작구 주민들. 남편과 함께 유모차를 끌고 나온 최선혜 씨(38·여)는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라서 2주에 한 번은 나온다”며 “다른 한강공원보다 사람이 적고 여유로워서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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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한동안 문을 닫았던 서점, 갤러리 등도 최근 다시 문을 열었다. 노들섬을 운영하는 어반트랜스포머의 이소애 팀장은 “날이 좋을 때면 약 5000명이 찾는다”며 “자전거나 시내버스, 도보로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인근 주민들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대규모 개발 대신 시민 아이디어 채택

노들섬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섬이 된 뒤로 약 50년간은 텃밭 등으로 이용되며 관심 밖에 있었다.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2004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이곳에 오페라하우스를 세우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이후 오세훈 전 시장은 예술센터를 짓겠다는 구상을 내놓기도 했다. 각종 개발 계획은 고 박원순 전 시장 취임 이후 예산 부족, 반대 여론 등의 이유로 백지화됐다.

학계, 시민단체 등이 2013년부터 노들섬의 활용 방안 논의를 이어갔다. 대규모가 아닌 소규모로 개발하고, 시민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 것도 이때부터다.

서울시는 이 과정에서 노들섬을 운영할 사람들을 찾는 공모전을 열었다. 이 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 노들섬의 모습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들이 바로 어반트랜스포머라는 팀이다. 김정빈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와 졸업생 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 교수는 “방향이 정해진 뒤 위에서 내리는 ‘톱다운’ 방식이 아니라 먼저 시민에게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묻는 방식의 공모전이라 신선했다”고 떠올렸다.

어반트랜스포머가 내세운 콘셉트는 ‘음악의 섬’이었다. 성장하는 음악가들이 마음껏 공연하며 시민들과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을 노들섬에 조성하자는 것이다. 465석 규모의 라이브하우스는 그렇게 들어섰다. 임동선 어반트랜스포머 이사는 “서울에 공연장은 많지만 500석 안팎의 중규모 공연장은 찾기 힘들다”며 “소란, 데이브레이크, 가을방학 같은 뮤지션들이 설 수 있는 공간 조성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평상시 캐치볼을 하거나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잔디광장은 약 3000명이 관람할 수 있는 야외무대로도 변신한다. 책이나 요리, 식물 등 음악과 어우러질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을 접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서점 ‘노들서가’에는 직접 콘셉트에 맞춰 꾸밀 수 있는 작은 매대를 출판사에 제공했다. 대형 서점에서 보기 힘든 독립출판사의 책도 갖췄다. 식물 기르기, 소품 만들기 등 시민을 대상으로 한 작은 교실을 열고 싶은 이들에게도 작은 공간을 내어준다. 주민들이 1유로에 집을 사서 직접 리모델링해 다양한 계층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거듭난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발리스블록’ 사례도 차용했다. 임 이사는 “시민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도록 한 점이 인상적”이라며 “우리도 노들섬에서 그런 시도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좋은 공공시설이 시민 행복지수 높여”

노들섬이 새롭게 개장한 지 1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장기화로 노들섬 역시 기획한 많은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었다. 많은 가수들의 공연도 줄줄이 취소 또는 연기됐다. 그래도 이곳을 찾아주는 발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책을 사지 않더라도 서점을 마음껏 둘러볼 수 있고 갤러리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잔디밭에서 망중한을 보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방문객 중에는 서점 앞에서 “들어가도 되나요?”라고 묻는 것처럼 노들섬의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데 어색함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공공시설은 허름하거나 지저분하다는 편견 때문인지 잘 가꿔진 공간은 돈을 내고 이용해야 한다는 이들이 아직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도 공공시설이 더욱 깔끔하게 조성될 필요가 있다는 게 노들섬을 운영하는 이들의 생각이다.

김 교수는 “좋은 시설을 이용하면 ‘공간 자존감’이 높아지고 행복감도 커져 사회에도 플러스 효과를 가져온다”며 “낙후된 구도심이나 저소득층 주거지에 좋은 공공시설이 들어선다면 사회 전체의 행복지수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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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규 기자 kyu@donga.com
#공간복지#노들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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