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역풍 부른 ‘통신비’… 당청, 정책 신뢰성 무너뜨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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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추경 국회 통과]
‘4차 추경’ 통신비 선별 지급 선회… 6일 저녁 열린 고위당정청 협의서
총리-기재부 난색에도 靑 ‘강행’… 文대통령 “모두를 위한 작은 정성”
여권서도 “효과 없다” 지적 이어져… 與지도부, 靑 눈치보느라 손 못대
“추경 발목 잡을수도” 결국은 철회… 4050 “세금만 내고 혜택 제외” 불만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왼쪽)와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22일 국회에서 2020년도 제4차 추가경정예산안 합의문에 서명한 뒤 취재진 앞에서 합의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왼쪽)와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22일 국회에서 2020년도 제4차 추가경정예산안 합의문에 서명한 뒤 취재진 앞에서 합의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논란 끝에 결국 선별 지원으로 일단락된 ‘전 국민 통신비 지급’ 논의의 출발은 6일 저녁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정세균 국무총리,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 등 참석자들은 4차 추가경정예산안을 7조 원대로 편성하기로 하고, ‘비대면 활동 뒷받침을 위한 통신비 지원’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전 국민 대상이었던 1차 긴급재난지원금과 달리 2차 재난지원금은 선별 지원하되, 통신비를 지급하기로 한 것. 당정청은 당시 17∼34세 및 50세 이상 또는 65세 이상 지원 등 복수의 안을 두고 논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1일 복수의 여권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에서 먼저 통신비 지급 방안을 들고나왔고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민주당과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했다. 일각에서 알려진 것처럼 민주당 주도로 진행된 정책이 아니었다는 것. 민주당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통신비 지원 드라이브를 걸었고, 당도 판단하기에 4인 가구면 8만 원 상당의 지원이라 괜찮겠다고 봤다”고 했다. 당이 선별 지급이 아닌 전 국민 지원으로 대상 확대를 주장했던 배경이다. 당시 정 총리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마지막까지 통신비 전 국민 지급의 실효성을 두고 난색을 표했지만 결국 당정 협의를 따르기로 했고 이날 회의를 기점으로 전 국민 통신비 지급 방안은 급물살을 탔다.

9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신임 지도부 간담회에서 민주당 이 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통신비 지원 확대를 공식 건의했다. 다음 날 문 대통령은 “적은 액수이지만 13세 이상 국민 모두에게 통신비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하며 “국민 모두를 위한 정부의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고 했다.

하지만 발표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역풍이 일기 시작했다. 추경 편성에는 동의했던 야당은 전 국민 통신비 지급안이 포함된 것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이낙연 대표와의 첫 회동에서 “국민은 한번 정부 돈에 맛을 들이면 떨어져 나가려 하지 않는다”고 날을 세웠다.

야권뿐 아니라 여권 내에서도 반발이 이어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통신비는 직접 통신사로 들어가 승수 효과(정부 지출을 늘릴 경우 지출한 금액보다 많은 수요가 창출되는 현상)가 없다”고 했다. 심지어 친문 핵심인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통신비 지급 예산으로 차라리 전국 무료 와이파이망 확대 사업에 투자하자”며 공개 반대했다. 여기에 열린민주당과 정의당도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민주당은 주말이었던 13일 긴급 비공개 지도부회의를 열었다. 당시 당 관계자는 “지도부 내에서도 부정적인 목소리는 있었지만, 결국 원안대로 국회로 가져가서 협의하자고 결론 내렸다”고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내에선 “청와대에서 주도해 가져온 통신비 지급안을 민주당이 직접 손대기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국회로 공이 넘어온 만큼 여야 협상 과정에 맡기기로 한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왔다.

한발 뒤로 빠져 있던 청와대는 버티기로 들어갔다. 이호승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14일 라디오에 출연해 “통신비를 매달 내야 하는 일반 국민 입장에서 보면 그 금액이 무의미하다고까지 얘기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통신비 전 국민 지원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날 최재성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도 방송 인터뷰에서 “통신비 문제에 대해 여당에서 스스로 변경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하지만 전 국민 지원에 대한 반대 여론을 넘어서지 못했고 추경 처리가 더 늦어지면 안 되는 민주당은 22일 국민의힘과의 협상 과정에서 통신비 선별 지급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35세 이상 65세 미만을 대상으로는 ‘줬다 뺏는’ 꼴이 되면서 정책 일관성 및 신뢰도 저하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미 온라인에서는 “세금은 가장 많이 내는데 보상에선 제외됐다”며 이들 세대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 누리꾼은 “정부 여당에 40, 50대는 잡아놓은 물고기고 20, 30대는 도망가려는 물고기라서 지원하냐”고 비꼬았다. 여권 관계자는 “결국 통신비 지급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작은 위로와 정성’이라던 대통령도, 청와대를 무작정 뒷받침하려던 여당도 다 같이 민망해졌다”고 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최혜령 기자
#통신비#역풍#4차 추가경정예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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