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조사단, 수사권 없고 독립성도 의문… ‘市 셀프조사’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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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의혹]서울시 ‘진상규명’ 입장 발표
외부전문가 영입한다고 했지만 선정-운영 방식 등 아직 못 정해
강제수사 불가… 실효성 떨어질듯
입장문서 ‘박원순’ 이름 적시 않고 ‘2차 가해 차단’ 최우선 과제 꼽아

서울시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64)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지 닷새 만인 15일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진상규명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시는 이날 입장문을 내면서 성폭력 대신 ‘직원 인권침해’라고 표현하고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직원 A 씨에 대해서도 ‘피해 호소 직원’이라고 칭하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 서울시가 검토 중인 민관합동조사단은 수사권 등 강제적 권한이 없는 데다 조사 위원의 독립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강제적 권한 없어 ‘셀프조사’에 그칠 수도

서울시는 이날 ‘직원 인권침해 진상규명에 대한 서울시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여성단체와 인권전문가, 법률전문가 등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시는 조사단의 규모나 구성, 운영방식, 일정 등은 아직 정하지 못했지만 세부 방안을 여성단체 등과 협의할 방침이다.

하지만 조사단이 수사권 등 강제적 수단을 갖지 못할 경우 실체 규명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시는 조사 대상인 전·현직 정무라인 공무원들의 출국 여부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여성단체나 법률전문가가 조사에 관해 충분한 지식이 있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조사단에 외부 전문가들을 참여시키겠다고 했지만 독립성을 담보하지 못할 경우 사실상 ‘셀프조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서울시는 조사 위원 선정 방식과 관련해 “여성단체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그동안 외부 시민단체나 인권·법률 관련 외부 전문가를 적극 영입해왔다. 박 전 시장에게 여성인권 관련 조언을 하는 임순영 젠더특별보좌관도 한국성폭력상담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활동한 외부 전문가다. 지난해 1월 부임한 임 특보는 A 씨의 피해가 이어지는 상황을 차단하지 못했고, 박 전 시장의 피고소 사실 유출 관련 조사 대상자 중 한 명이다.

일각에서는 합동조사단에 강제수사권을 가진 기관이 참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경 같은 수사기관 또는 감사원 등 행정력을 동원할 수 있는 기관이 포함되어야 조사의 실효성과 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 ‘1차 가해’ 언급 없이 ‘2차 가해’만 강조

서울시는 이날 입장문에서 최우선 과제로 ‘피해 호소 직원에 대한 2차 가해 차단’을 꼽았다. 입장문에 ‘성폭력’ 관련 표현이나 가해자로 지목된 박 전 시장에 대한 언급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5·수감 중) 성폭행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이었던 서혜진 변호사는 “‘1차 가해’에 해당하는 박 전 시장의 행태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어 문제를 희석시키려 한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이날 “서울시장에 의한 성추행 사건 이후 서울시가 처음으로 입장을 낸 자리에서 성추행이라는 표현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피해자를 지칭하며 ‘피해 호소 직원’이라는 표현을 쓴 것을 보면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한다는 서울시의 진정성이 무색한 자리였다는 점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날 입장문 내용은 전날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주요 간부 대책회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가 비서로 채용될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서 권한대행은 국가인권위원회에 고발된 조사 대상이어서 서울시의 진상조사에 한계가 있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박원순 성추행 의혹#서울시#진상조사#셀프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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