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듣고 눈물이…” 시민들 위로하는 ‘지하철 DJ’

김하경 기자 입력 2020-05-15 03:00수정 2020-05-18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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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안내방송으로 ‘칭찬 100건’… 서울교통공사 ‘센추리 클럽’ 3인
2호선 승객 울린 유정현 주임 “누군가에게 위로된다니 뿌듯”
수능 수험생 격려한 양원석 주임… 시험날 “마지막 아닌 새 시작이길”
색다른 안전 경고 방송 최호 씨 “무리한 승차 위험… 열차는 곧 와요”
“비와 함께 승객 여러분의 근심과 걱정도 모두 씻겨 내려갔으면 좋겠습니다.”

지하철 5호선 전동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중저음의 남성 목소리. 승객들에게 안부를 묻기도 하고 힘내라는 말도 전한다. 5호선 기관사인 서울교통공사 양원석 주임(26)은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돼 있는 전동차 운전실에서 근무하다 보니 승객을 직접 대할 기회가 거의 없다”며 “방송은 승객과 연결되는 얼마 안 되는 끈”이라고 말했다.

전동차 안내방송은 크게 환승 안내, 승객 예절 등 미리 녹음해 놓은 음원을 재생하는 자동 안내방송과 기관사나 승무원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육성 방송으로 나뉜다. 보통 녹음 음원을 자동으로 송출하지만 필요에 따라 육성 방송을 한다. 일부 기관사와 승무원은 라디오 진행자처럼 일상 이야기, 감정 등을 담아 감성 안내방송을 하고 있다.


감성 안내방송을 접한 일부 승객은 서울교통공사 홈페이지 게시판이나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칭찬의 글을 남긴다. 서울교통공사는 감성 안내방송을 독려하기 위해 2018년 칭찬민원 100건 이상을 받은 기관사와 승무원 모임인 ‘센추리클럽’을 만들었다. 현재 이 클럽의 회원은 2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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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주임은 지난해 6월 센추리클럽의 15번째 회원이 됐다. 중학교 3학년 때 지하철 차량기지를 견학한 뒤 장래 희망으로 기관사를 꿈꿨고 지하철 승객으로 감성 안내방송을 접하면서 기관사가 된다면 승객에게 힘이 되는 방송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혼자 운전실에서 근무하지만 방송을 할 때는 밝은 표정을 짓는다. 굳은 표정을 짓고 말하면 무의식적으로 딱딱한 감정이 말에서 배어나온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었던 11월 14일 아침은 잊을 수 없다. 양 주임은 이날 “오늘은 단순히 마지막이 아니라 사회로 나가는 새로운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해 학부모와 수험생이 운전실을 직접 두드리며 음료수를 건네기도 했다.


출입문이 닫히는 순간 승객이 무리하게 열차 안으로 들어가는 위기 상황에선 감성 안내방송을 어떻게 할까. 지하철 4호선 승무원 최호 씨(27)는 “혹시 출입문이 닫히는 순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슬아슬하게 승차하셨나요? 무리한 승차는 다칠 위험이 있습니다. 열차는 바로 뒤에도 옵니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수습 승무원 시절 선배의 권유로 처음 감성 안내방송을 시작한 최 씨는 지난해 10월 18번째로 센추리클럽에 들어갔고 사내 방송동아리에서 틈틈이 방송 관련 지식을 쌓고 있다.

그는 방송하기 가장 좋은 구간으로 동작대교 철교를 꼽았다. 전동차가 갑자기 어두운 지하 공간에서 빠져나와 사방이 환한 구간에 들어서면 승객들이 순간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이런 분위기에서 감성적인 방송을 하면 더 잘 소통할 수 있단다.


지하철 2호선 승무원인 유정현 주임(29)은 2016년 11월 감성 안내방송에 입문했다. 유 주임은 당시 1개월가량의 병가를 마치고 출근해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감성 방송을 시작했다. 울컥할 만한 승객의 메시지도 받았다. 유 주임은 “흔히 사용하는 문구로 ‘한 주 동안 고생 정말 많으셨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 승객이 방송을 듣고 울었다고 했다”며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앞으로도 방송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센추리 클럽#지하철 dj#서울교통공사#감성 안내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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