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 학력평가’에…“모여서 시험보고 채점” 학원 홍보에 ‘솔깃’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3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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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르는 고3 수험생. (뉴스1DB) © News1
전국연합학력평가를 치르는 고3 수험생. (뉴스1DB) © News1
‘모의고사는 모의고사답게 봐야합니다. 실전 같은 시험이라야 정확한 실력을 평가할 수 있기에 A 학원 강의실에서 모의고사를 실시합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A 학원이 최근 고3 학부모들에게 보낸 문자다. 24일로 예정된 올해 첫 전국연합학력평가(학평)를 학원에 나와 치르라고 홍보하는 것이다. A 학원은 학교에서 시험지를 받아 미개봉 상태로 9시 반까지 입실하라고 공지했다. 시험 시간표에 맞춰 9시 40분부터 시험을 보고, 학교 급식에 맞춰 도시락을 시켜줄 계획이다.

교육 당국은 당초 이번 고3 학평을 학교에서 치르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나 아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 사상 첫 재택 시험을 결정했다. 학교에서 시험지를 받아가거나, 교육청 사이트에서 문답지를 내려받아 집에서 시험을 치르라고 했다. 일부 학원이 이를 악용해 방역노력을 무력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학원은 시험료까지 받고 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따르면 5만 원을 받기로 한 학원도 있다.

돈을 받든 안 받든 학원에서 학평을 치르는 건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온라인 개학이라도 엄연한 학교 정규 수업시간이므로 학원에서 학생을 모집하는 건 ‘등록 외 교습과정’ 위반이다. 교육청에 신고한 교습과정 외에 학평 관리 명목으로 비용을 받는 건 ‘교습비 초과징수’에도 해당한다.

불법이라 해도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귀가 솔깃하다. 선착순 모집이 빠르게 마감됐다. 3월 학평이 계속 미뤄지며 대입 계획을 세울 시기가 늦어졌다는 불안감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원래 학평은 과목별로 학급 및 학교 석차는 물론 전국 백분위가 나오기 때문에 입시 전략을 짤 때 중요하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이번 학평은 재택 시험인 만큼 채점 및 성적 제공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학평을 치르는 학원들은 이 틈새도 파고든다. 전국 백분위는 알 수 없지만 영역별 오답문제와 취약 영역 심층 분석을 토대로 입시 전략 컨설팅을 해준다고 유혹한다.

한 고3 학부모는 “주변 학부모 가운데 학평만이라도 학교에서 제대로 보길 원하는 학부모가 많았다. 원하는 학생만 학교에서 1, 2학년 교실까지 활용해 거리를 두고 보게 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초중고교 시설을 활용하는 토익까지 재개되는 마당에 수험생 시험을 못 보게 하니 답답하다”고 했다. 교육당국이 현장 요구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탓에 사교육 시장만 커진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이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이번 학평을 치러도 전국 백분위를 알 수 없다는 점도 안타까워 한다. 이와 관련해 교육평가기관 유웨이는 합격진단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가채점 서비스를 통해 전국 예상 석차를 알려주겠다는 것.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전국 학생이 데이터를 입력하는 게 아니라 아주 정확하진 않겠지만 그동안 쌓인 데이터 알고리즘 분석으로 유의미한 정보가 나올 것”며 “교육당국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안하니 우리가 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뒤늦게 23일 “학원에서 학평을 볼 경우 처벌하겠다”며 전국 시도교육청에 현황 파악을 지시했다. 적발시 벌점이 부과되고, 위반 정도에 따라 등록말소나 교습정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교육부는 요즘 유행하는 스터디카페의 경우 학원이 아니라서 행정처분할 수는 없지만, 응시 장소를 제공하는 경우 단속하기로 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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