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상 환자 초기검역 실패… “동네병원 대처능력 키워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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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초기 대응 3대 허점과 전문가 제언

지난달 20일 중국 우한(武漢)발 항공기를 타고 온 55세 한국인 남성이 인천공항에 내렸다. 검역 과정에서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 어떤 증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21일 몸살 기운을 느껴 경기 평택시의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그의 우한 방문 이력을 봤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의심 환자로 신고하지 않았다. 정부의 신고 기준(발열과 호흡기 증세가 동시 발현)과 맞지 않아서다. 이 환자는 25일에야 보건당국에 신고됐다. 바로 ‘4번 환자’다.

○ 913명이 바이러스에 노출


경증이거나 무증상이었던 2, 3번 환자도 검역에서 걸러지지 않았다. 지역 의료기관도 정부의 느슨한 기준 탓에 이들을 조기에 포착하지 못했다. 그사이 3번 환자는 6번(2차) 10, 11번(3차) 환자에게 병을 옮겼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뒤늦게 검역 기준을 강화하고 14일 이내 우한 입국자들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일본에서 입국한 12번 환자(49·중국인 남성)를 놓쳤다. 중국 이외의 제3국 입국자는 아예 검역 대상도 아니었다. 12번 환자의 접촉자는 361명에 이른다. 3일까지 집계된 확진 환자 15명의 접촉자는 913명이다.

신종 감염병의 경우 정확한 특징이 파악되기 전이라 보수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큰 병원들의 감염병 대처 능력은 향상됐지만 동네병원, 보건소는 대책에서 소외됐다”고 말했다.

○ 중앙과 지방이 제각각 대응


2일 경기 부천시는 12번 환자의 동선을 공개했다.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아직 역학 조사 중’이라며 공개하지 않은 정보였다. 앞서 환자 5명이 추가된 지난달 31일에도 질본은 동선과 인적사항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당 지역 보건소가 자체적으로 정보를 공개했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보건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정부가 감염병 전문가들이 모인 질본에 전권을 주고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행정안전부 관할인 보건소도 위기 상황에서는 전적으로 질본의 통제를 받고 대외 창구도 일원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앙부처끼리도 불통(不通)이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본부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일 “중국인에 대한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하고 관광 목적 중국 방문은 금지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 밤 약 2시간 만에 ‘중단’이 아닌 ‘중단 검토’, ‘금지’가 아닌 ‘금지 검토 예정’이라고 각각 정정했다. 부처 협의 없이 발표됐다는 이유였다. 박 장관은 3일 “신속히 공개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인한 실수였다”며 사과했다.

○ 첫 번째 환자 일주일 후 꾸려진 중수본


질본은 27일 감염병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했다. 그제야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중수본이 꾸려졌다. 1번 환자 발생 후 나흘이 지나 설 연휴가 시작되고 3명이 추가되면서 출범한 것이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감염병 위기경보가 경계로 격상됐으면 그에 준하는 방역인력 충원, 신속한 진단검사, 입국 제한 조치가 곧장 따라왔어야 한다”며 “그런데 중수본이 출범하고 6일이 지난 뒤에야 입국 제한이 결정된 건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만으로는 확산을 막기 힘들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시민 스스로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자진 신고나 자가 격리 대상일 때 반드시 규정을 준수하는 의식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감염병 예방은 개인의 노력이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한다”며 “위생수칙을 잘 지키고 정부가 내린 지침 등을 잘 따라주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지 image@donga.com·강동웅 기자
#우한 폐렴#코로나 바이러스#무증상 환자#초기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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