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이웃, 오래가게… 포린북스토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자고 일어나면 변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라지만, 우리 곁에는 오랜 시간 골목을 지키고 있는 노포(老鋪)들이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들을 ‘오래가게’라는 이름으로 기리고 있습니다. 어느새 떼지 못할 만큼 정이 들어버린 이웃을 소개합니다.》

‘We Buy, Sell and Trade all kinds of books’ (모든 종류의 책을 사고, 팔고, 교환합니다.)

문 위 차양에 적힌 문구입니다. 헌책방으로서 이보다 더 자신만만한 구호가 있을까요. 들어가 보니 과연 이 정도 자신감은 가질 만하다 싶었습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갖 분야의 책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게다가 책들은 모두 영어 원서입니다. 1974년 문을 연, 한국에서 제일 오래됐다는 외국 원서 전문 중고서점입니다.

“유명한 정치인이나 관료들도 단골이 많아요.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젊은 시절엔 우리 집 책을 사서 영어공부를 했다니까.”

최기웅 사장님(76)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묻어 있습니다.미군 부대에서 나온 헌 책을 구해 노점에서 팔며 시작한 중고서점입니다. 예전에는 미국 백화점 카탈로그를 우리 백화점에 디자인 견본으로 납품해 쏠쏠한 재미를 보기도 했습니다.

영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는 원서를 찾는 손님도 늘었습니다. 위치가 이태원인 만큼 외국인도 많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전성기’만 못하다는 게 사장님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한때 20만 권에 육박하던 장서도 10만 권으로 줄었습니다.

“사람들이 책 자체를 읽지 않는 것 같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잖아.”

그래도 아직 은퇴할 생각은 없습니다. 여전히 오랜 단골이 있고,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새 손님이 있습니다. 영어 조기 교육 영향으로 어린이 손님도 늘었습니다. 매일 그들을 맞는 것이 사장님의 보람이자 즐거움입니다. 그들에게 미안해서라도 가게를 비울 수 없습니다.

→ 서울 용산구 녹사평대로 208. 녹사평역 3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포린북스토어#오래가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