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경남지역 육묘농민들 뿔났다

  • 동아일보

경남육묘인연합회 회원들이 최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비현실적인 토지보상법 손실보상 규정의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경남육묘인연합회 회원들이 최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비현실적인 토지보상법 손실보상 규정의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묘목 농사가 반(半)농사’라고들 합니다. 쥐꼬리 손실보상금을 제시하는 것은 육묘업을 접으라는 소리나 다름없습니다.”

15일 오후 경남 밀양시 상동면 가곡리 밀양푸른육묘. 이 회사 전강석 대표(55)는 “사회기반시설인 도로 개설도 중요하지만 농민들에게 건강한 모종을 공급하는 육묘업 역시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푸른육묘 서편 옥교산 자락과 동편 비학산 기슭에서는 울산∼함양고속도로 공사를 위한 터널 굴착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양쪽 산을 관통하는 터널은 전 씨의 육묘농장이 있는 중성들판 위를 지나는 높이 25m, 너비 16m의 고가도로와 연결된다. 본격적인 고가도로 설치공사는 내년에 시작된다. 밀양강을 끼고 있는 중성들판은 비닐하우스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육묘업체 하우스 안에서는 인부들이 고추와 가지 묘목을 손질하고 있었다.

도로공사는 이 일대 육묘농장과 비닐하우스, 농지 등에 대해 보상을 통보했으나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지주(농장주)와 마찰이 생긴 것이다. 전 대표 부부는 20년 전부터 하우스 1만5000여 m²에서 고추 토마토 수박 가지 상추 배추 등의 묘목을 연간 4회 생산한다. 지역주민 등 직원도 25명이나 되는 기업농이다. 울산∼함양고속도로 개설에 따라 농장을 이전하려면 4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지만 도로공사는 땅값을 포함해 14억 원을 제시했다. 유리온실과 철재 파이프 등 자재를 다른 농지로 옮겨 새롭게 육묘를 시작하려면 엄두를 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보상이 적은 이유는 2013년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 시행규칙 48조 ②의 2가 신설됐기 때문이다. 이 규정은 지력(地力)을 이용하지 않고 재배 중인 작물을 이전해 영농을 계속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인정되면 실제 소득의 4개월분을 보상하도록 돼 있다. 일반 농사, 시설하우스 등은 소득 2년분을 보상하는 것과 큰 차이가 난다. 지상 40∼60cm의 육묘상(床)에서 묘목을 기르는 ‘벤치육묘’를 차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육묘농들의 주장이다. 전 대표는 “땅에서는 육묘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농림축산식품부는 벤치육묘를 권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국 육묘농업인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진주에서 으뜸육묘장을 운영하는 최경우 경남육묘인연합회장과 회원들은 이달 초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토교통부를 규탄했다. 비현실적인 토지보상법 시행규칙의 개정을 위해 지난해 9월부터 국토부에 면담을 요청하고 공동 조사를 건의했지만 모두 묵살했다는 설명이다. 국토부, 농식품부, 한국육묘산업연합회, 전문가가 위원회를 구성해 시행규칙의 문제점을 검토하자는 제안이다. 이미 서울대 경상대 농대 교수들은 이 조항이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낸 상태다.

최 회장은 “공익사업을 위해 토지수용을 하려면 정당하게 보상하는 것이 원칙이다. 육묘농 누구나 불이익을 당할 수 있어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육묘농민들은 국토교통위 소속인 자유한국당 박완수 의원(창원 의창)과 밀양 출신 이병희 경남도의원 등에게 규칙 개정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 의원은 경남도의회 5분 발언을 통해 “탁상행정으로 육묘농을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며 개정을 촉구했다. 박 의원은 정부 부처를 상대로 규칙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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