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산행 다녀와 취업하겠다 했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히말라야 원정대 참변]슬픔에 잠긴 국내 유족-지인들
대원 중 막내 이재훈씨 어머니, “손 벌린적 없는 의젓한 아들” 오열

아들은 산으로 떠나며 어머니에게 “마지막 산행”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렸지만 아들은 “엄마! 이번에 마지막으로 다녀와서 취업 준비할게요”라고 약속하며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는 불안했지만 그동안 여러 차례 산행을 무사히 다녀온 아들을 믿고 보내줬다. 하지만 그것이 어머니와 이재훈 대원(24)의 마지막 만남이 됐다.

이 대원의 모친 A 씨는 1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내가 늘 산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해도 본인 손으로 돈을 모아 기어코 갔다”며 “이번에도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간다고 해 더 이상 말릴 수가 없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원정대의 막내인 이 대원은 부산에서 부경대를 다니며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 왔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하는 데 부모에게 손을 벌릴 수 없어서였다.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녀 부모에게 한 번도 손을 벌린 적이 없는 의젓한 아들이었다. 이런 아들을 황망히 떠나보낸 A 씨는 통화 내내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A 씨는 “100점짜리인 우리 아들, 이제 스물네 살밖에 안 됐는데…”라고 말하다 통곡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지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유영직 대원의 선배인 황모 씨(66)는 “어떤 매스컴에서도 각광받진 않았지만 ‘신항로’를 개척하는 데엔 최적의 인물이었다”며 “이번 원정대의 ‘숨은 실력자’가 바로 유영직”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김창호 대장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보다 나이가 두 살 많은 유 대원을 원정대에 영입했다고 한다. 유 대원은 165cm의 왜소한 체격이지만 현장에 대한 적응력과 과감성 등이 뛰어났다고 산악인들은 전했다.

유 대원은 효심도 뛰어났다. 경남 합천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냈는데 일이 없는 날에는 늘 어머니를 돌봤다. 어머니가 최근 건강 악화로 병원에 입원해 유 대원이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또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 회장은 “우리에게 이번 원정대의 죽음은 가족이 죽은 것 이상의 슬픔”이라며 “특히 김창호 대장은 한국 산악계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김 대장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기도 했다. 변기태 한국산악회 부회장은 임일진 감독에 대해 “산을 정말로 좋아했던 사람”이라며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산에 대한 애정 하나로 갔던 사람이라 더 침통하다”고 토로했다. 정기범 한국산악회 회장은 정준모 한국산악회 이사에 대해 “회사 경영으로 시간이 부족한 가운데도 신루트 개척을 격려하고자 방문했다가 변을 당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정훈 hun@donga.com·이지훈 기자
#마지막 산행#국내 유족-지인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