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관객 시대 디딤돌 놓은 영화계 어머니 떠나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8일 03시 00분


배우 최은희 빈소 추모 발길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고인은 영화 속 변화무쌍한 역할을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신 분이셨습니다.”(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92세로 세상을 떠난 배우 최은희 씨의 빈소에는 17일 원로 영화인과 후배 연기자 등 조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이들은 핑크빛 장미로 곱게 둘러싸인 최 씨의 영정 사진 앞에 헌화하며 추모했다.

최근까지도 최 씨의 자택을 찾았던 오랜 벗인 배우 신영균 씨(90)는 “배우는 화려한 직업인데 나이가 들면서 병들고 쇠약해지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힘들었다”며 “하늘나라에서도 신필름을 만들어 잘 운영하셔서 나중에 신필름에 있었던 이들끼리 모였으면 좋겠다”고 애도했다.

평소 자녀들에게 “원로와 현역 영화인들이 소통하며 가깝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혀 왔다는 고인의 빈소에는 모처럼 배우와 감독, 제작자 등 각계각층 영화인이 모여 북적였다. 별세 소식을 접하고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빈소를 지킨 배우 한지일 씨(71)는 “최은희 선배님 세대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천만 관객의 한국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며 “유명해져도 항상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라고 가르치시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울먹였다. 1960, 70년대에 활동하며 고인과 함께 멜로 연기를 선보였던 배우 윤일봉 씨(84)도 오랜 시간 빈소를 지키며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애통해했다.

고인은 최근까지도 휠체어에 의존하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영화계 후배와 옛 지인들을 꾸준히 만나 왔다고 한다.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북한에서 탈출한 뒤 이들 부부와 오래 교류하며 ‘최은희 신상옥 납북수기, 김정일 왕국’을 쓴 김일수 전 동아일보 홍콩특파원은 “최은희 씨가 먼저 납북됐을 때 신상옥 감독이 홍콩으로 날 찾아와 인연을 맺고 평생 알고 지내 왔다”며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꼭 만났는데 나이가 들어도 항상 곱게 차려입고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염수정 추기경도 이날 “최은희 소화데레사님의 선종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라는 애도의 메시지를 전했다. 고인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사후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중요한 한국 영화에 거의 모두 출연했고 당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스타 중의 스타였다”며 “신상옥과 최은희 두 명의 기념관을 짓는 게 평생 소원이셨는데 그걸 보지 못하고 가셔서 한스럽다”고 했다.

1970년에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으로 부임할 정도로 후학 양성에 힘써 왔던 최 씨의 빈소에는 후배 배우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배우 정혜선 씨(76)는 “후배들에게 늘 따뜻하고, 한마디로 천사 같은 분이셨다”고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실제 고인은 2007년 펴낸 자서전 ‘고백’의 발간 계기 중 하나로 “내 기록을 통해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진정한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아픔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조언하는 등 후배들을 향한 애정을 나타냈다.

빈소에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국현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등 관련 단체 인사들이 조화를 보내 고인을 애도했다.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영화인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장선희 sun10@donga.com·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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