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검사 못믿어… 매일 추락하는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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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크레인 잇단 사고에 근로자들 불안 확산
안전진단 합격 9일만에 인명사고… “육안으로 30분만에 검사 끝내”
근로자들 내주 안전대책 요구 집회

19일 오전 11시경 서울의 한 아파트 신축공사장. 노란색 타워크레인 4대가 서 있었다. 곳곳에 쌓인 건축 자재를 옮기느라 타워크레인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점심때가 되자 타워크레인이 멈췄다. 40m 높이에 있는 조종석 문이 열리고 검정 패딩점퍼를 입은 50대 A 씨가 나오더니 사다리를 타고 한 칸 한 칸 내려왔다.

A 씨는 23년간 타워크레인에 오른 ‘베테랑’이다. 하지만 그 역시 요즘 타워크레인에 오르는 것이 무섭다. A 씨는 “하루하루 목숨 내놓고 일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제(18일)도 또 하나 넘어갔잖아. 나도 가끔 타워가 갑자기 빙글 돌다가 꼬여서 고꾸라지는 꿈을 꾼다”고 말했다. 꿈 이야기를 하며 A 씨는 손을 원 모양으로 돌렸다.

18일 근로자 한 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친 경기 평택시 아파트 공사현장 타워크레인 사고는 슈거치대(상부의 하중을 견디는 장치)가 갑자기 부러져 일어났다. 용인의 한 물류센터 신축 공사장에서 7명이 죽거나 다친 뒤 불과 9일 후 일어난 사고다.

경찰은 부품 결함을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정기 검사에서는 합격 판정을 받았다. 경찰은 부실 검사 가능성을 보고 있다. 경찰은 타워크레인 검사업체 관계자를 곧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이곳은 정부 위탁을 받아 타워크레인 점검을 맡고 있는 전국 6개 업체 중 하나다. 공교롭게 용인에서 사고가 난 타워크레인도 이 업체가 합격 판정을 내렸다. 해당 업체는 정기검사 불합격률이 1.7%로 6개 업체 중 가장 낮다. 20일에는 고용노동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참여하는 합동 감식이 진행된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졸속, 부실 검사를 의심한다. 20년 경력의 타워크레인 기사 서모 씨는 “현장에 나온 검사기관 직원들이 뭐가 급한지 모르겠는데 30분 정도 검사하고 끝낸다. 용접 부분은 대부분 페인트로 칠해져 보이지도 않는데 육안 검사로 뭐가 보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사고가 잇따르자 현장 분위기는 불안을 넘어 공포로 치닫고 있다. 15년차 타워크레인 기사 신모 씨는 “검사를 받아도 사고가 나는데 목숨 걸고 일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불안감을 드러냈다.

정회운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타워크레인 설·해체노조위원장은 “일당 100만 원을 준대도 올라가는 걸 꺼리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정 위원장은 “같은 타워크레인 작업을 놓고 한국에서는 하루 정도 걸리지만 미국에서는 일주일이 걸린다”며 “비용을 줄이려고 ‘빨리 빨리’를 외치는 건설현장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위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명구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법적으로 정해진 크레인 점검비가 최대 9만8000원으로 위험 비용에 비해 너무 저렴하다. 검사비를 현실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26일 하루 동안 작업을 거부하고 서울 여의도에서 사고 예방과 안전대책을 촉구하는 집회를 연다.

김예윤 yeah@donga.com·권기범 / 평택=남경현 기자
#타워크레인#근로자#사고#인재#용역#안전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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