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유기 수사에 드러난 허위출장 공직관행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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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서 불법 모래채취 사실 알고도 말로 시정 요구하며 허위출장 신청
1심서 징역 6개월 선고받은 공무원… 법원 “직무유기 해당” 항소기각

전남의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불법 모래 채취 사실을 알고도 단속하지 않았다. 수사기관이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공직사회의 잘못된 허위 출장신청 관행이 드러났다.

광주지법 형사합의2부(부장판사 한원교)는 골재업체가 허가조건을 지키지 않은 것을 알면서 시정명령이나 경고처분을 하지 않은 혐의(직무유기)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공무원 A 씨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6일 밝혔다. 앞서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단독 이승규 부장판사는 A 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A 씨는 재판에서 “현장출장을 통해 잘못된 점을 확인한 뒤 골재업체에 시정조치를 요구하고 상급자에게 보고해 직무유기가 아니며 허위 출장신청 관련자들 중 자신만 기소한 것은 공소권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A 씨가 골재업체에 ‘시정조치 결과를 문서로 보내라’는 공문만 보낸 뒤 구두로 시정조치를 요구하며 허위 출장신청까지 해 직무를 유기했다”고 판단했다. 또 “A 씨의 허위 출장신청은 직무유기와 관련돼 처벌 필요성이 크고 다른 비리 공무원들은 자체 징계로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전남 보성경찰서는 2014년 11월 전남의 한 하천 주변에서 골재업체가 허가면적을 벗어나 모래를 채취하고 있지만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 골재업체가 허가조건을 위반해 10만 m³ 정도의 모래를 더 채취한 것으로 밝혀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2013년 8월 골재업체가 모래 채취 허가지역 경계선에 20m 간격으로 깃발을 꽂아야 한다는 허가조건을 지키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2013년 9월 골재업체에 ‘허가조건을 준수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A 씨는 2014년 5월까지 모래 채취 현장을 10여 차례 방문해 깃발이 미설치된 것을 알면서도 행정조치를 하지 않았다. 또 2014년 5월부터 3개월 동안 모래 채취 현장에 28차례 출장을 간 것처럼 허위 보고했다. 경찰은 A 씨를 직무유기 혐의로 입건한 뒤 검찰에 송치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허위 출장신청 의혹에 대한 추가수사를 벌여 A 씨 등 공무원 10여 명이 2013∼2015년까지 16∼178차례 전자결재 시스템으로 허위 출장신청을 해 2500만 원을 지급받은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A 씨에 대해 허위 출장신청을 한 혐의(공전자기록 등 위작) 등을 추가해 기소했다.

직무유기 수사가 허위 출장신청 공직비리 수사로 확대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공직사회에서 허위 출장신청이 은밀히 관행적으로 이뤄진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마련된 돈을 개인 유용이 아닌 공용비용, 회식비 등으로 쓴다고 추정한다.

법조계에서는 허위 출장신청의 처벌 조항인 공전자기록 등 위작은 형량이 엄하다고 경고한다. 공전자기록 위작에 벌금형이 없어 유죄가 인정될 경우 파면 이상 중징계를 받게 된다. 헌법재판소는 최근 공문서 작성 등이 전자기록 등에 의해 이뤄지고는 있지만 위·변조 가능성이 커 공전자기록 위작죄에 징역형만 있는 것은 정당하다고 합헌 결정했다.

허위 출장비가 적어도 재판에 넘겨지면 엄벌에 처해지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허위 출장신청이 공전자기록 위작으로 엄벌된다는 것을 모르는 공무원이 많다”며 “허위 출장신청 사건은 책임자만 기소되고 나머지 직원은 징계하는 사례가 많은 이유”라고 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전남 공무원 직무유기#전남 공무원 허위출장#불법 모래채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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