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향순 길병원 사회사업실장, 몽골 등 16개국 400여명 수술 지원
경제력 없는 국내 장애인들도 돌봐… 후견기관 연결해 생계대책 마련
서향순 가천대 길병원 사회사업실장(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11일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한 키르기스스탄 어린이들과 환하게 웃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 제공
11일 키르기스스탄 어린이 환자 6명이 인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에 입원했다.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나칙 군(2) 등이다. 당장 수술이 필요했지만 형편이 되지 않는 데다 현지 의료 수준이 심장 수술을 감당하기 어려워 애태우다 길병원에서 무료 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서향순 길병원 사회사업실장(48)은 “어린이들이 입국하기 직전 현지에서 의료진이 수술을 받을 수 있을지를 면밀하게 검사했다”며 “6명이 16∼20일 차례대로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면 31일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전했다.
길병원에서 무료 수술 지원 사업을 담당하는 서 실장은 심장병에 걸린 아시아 빈곤국가 어린이들의 대모(代母)로 불린다. 그는 국내 처음으로 베트남 심장병 환자를 초청해 수술한 1992년부터 길병원 사회사업실에서 근무했다. 26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의 보살핌으로 지난달 수술한 몽골 어린이 4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16개국 약 400명의 어린이가 새 생명을 되찾았다. 해외 봉사활동을 나간 의료진이 현지에서 상태가 심각한 심장병 어린이를 찾아낸 후 해당 국가가 수술을 요청하면 길병원은 환자와 가족을 초청한다.
서 실장은 1명당 2000만 원 안팎인 수술 및 치료비를 지원할 국내 후원기관을 연결한다. 수술이 잘 끝나 건강을 회복한 어린이들이 출국한 뒤에도 전화로 상태를 확인하는 환자 관리도 그의 몫이다.
심장병 어린이를 처음부터 돌보다 보니 병원에서 수술한 모든 어린이의 이름과 얼굴을 꿰뚫고 있다. 한겨울 반바지 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라오스 어린이들이 눈에 선하다. 또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처음 본다”고 말하던 이라크 어린이들의 표정도 생생하다.
특히 2010년 심장병 수술을 받고 캄보디아로 돌아간 보레이 군(당시 12세)을 3년 뒤 진료봉사에서 다시 만났을 때를 잊지 못한다. 2013년 현지 의료봉사단을 찾아 건강검진을 받은 보레이 군은 키 160cm, 몸무게 50kg의 누가 봐도 건강한 청소년으로 자랐다. 수술을 받으러 길병원에 왔을 때는 키 139cm, 몸무게 25kg에 불과했다. 보레이 군은 서 실장에게 “수술을 받기 전에는 숨이 너무 차서 체육시간이 싫었지만 지금은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마음껏 공을 차고 있다”고 말했다. 서 실장은 보레이 군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해외 심장병 어린이만 돕는 게 아니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국내 장애인이나 노인, 외국인 근로자, 가정폭력 피해자도 돌보고 있다. 중병을 앓고 있지만 수술 받을 돈이 없는 환자나 가족, 이웃이 사회사업실로 찾아오면 상담을 통해 어려운 사정을 확인한 뒤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수술을 통해 건강은 회복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해 속을 태우는 환자는 자활후견기관 등에 연락해 생계 대책까지 마련해 주고 있다. 그는 지난해 사회사업실 직원 4명과 함께 국내 환자 7562명을 상담해 1021명이 정부지원금 등을 받아 치료를 받도록 도왔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서 실장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그늘진 삶을 살아가는 이웃이 많다”며 “이들이 환한 웃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더 많은 독지가와 후원기관을 찾아 연결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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