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한의학 심취한 뒤 ‘야한 작가’로 방향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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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9월 5일 16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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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마광수/동아일보DB
사진=마광수/동아일보DB
5일 낮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소설가 마광수는 누구일까.

시인이자 소설가인 마광수는 1992년 출판된 문제작 ‘즐거운 사라’로 기억되고 있는 인물이다.

박두진 시인(1916∼1998)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한 마광수는 현대문학에 ▲망나니의 노래 ▲배꼽에 ▲고구려 ▲당세풍(當世風)의 결혼 ▲겁(怯) 등 6편을 발표했다. 1977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과정을 밟던 그의 나이 스물여섯 때 일이다.

1979년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조교수가 된 마광수는 한의학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의학을 통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성욕’이라고 생각한 뒤 그의 문학은 뚜렷한 방향성을 갖기 시작했다. 연세대 교수로 부임한 1984년엔 ‘음양 사상과 카타르시스’라는 논문도 썼다.

1989년 마광수는 세 편의 문제작을 연이어 발표했다. 선두작은 1월에 나온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였다. 4월에는 시집 ‘가자! 장미 여관으로’를 냈다. 그러고 5월부터 월간지 문학사상에 소설 ‘권태’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마광수 신드롬’이 일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한편으론 무수한 적도 양산됐다.

1991년 마광수는 소설 ‘즐거운 사라’를 출간했다. 그러나 시중에 풀렸던 책은 보름 만에 모두 수거됐다. 간행물윤리위원회가 판매금지 처분을 내린 것. 마광수는 검사에게 불려가 ‘주의’를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1992년 8월 개정판이 출간됐다. 초판이 나온 지 1년 만이었다.

‘즐거운 사라’ 개정판이 나온 지 두 달 만인 1992년 10월 검찰은 강의하던 마광수를 긴급체포했다. 1992년 10월 검찰에 끌려가던 마광수에게 수많은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다. 이에 마광수는 “10년만 지나도 이 사건은 코미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3년간의 법정 공방으로 마광수의 삶은 피폐해졌다. 결국 대법원은 유죄를 확정했고, 판결 다음 날 학교는 마광수를 해고했다.

마광수는 1998년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이후 마광수는 2007년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게재했다가 ‘빨간 줄’이 하나 더 그어졌다. 검찰은 음란물을 유포한 혐의로 벌금 200만 원에 약식기소 했고, 마광수는 항소하지 않았다. 마광수는 이후 2016년 8월까지 교수 생활을 했다.

이후 우울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진 마광수는 9월 5일 오후 1시 35분경 자택인 서울 동부 이촌동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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