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족 현충원 동반참배 11년… “의롭게 숨진 종민이의 선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6일 03시 00분


[6일 제62회 현충일]바다 빠진 아이 구하고 숨진 故채종민
‘현충원 1호 의사자’ 가족들의 현충일

의사자 묘역 묻힌 ‘1호 의인’ 5일 국립대전현충원 의사상자 묘역 내 채종민 씨의 묘비 옆에 고인을 추모하는 꽃이 꽂혀 있다(왼쪽 사진). 채 씨는 2007년 이곳에 처음으로 안장됐다. 2004년 회사 동료들과 함께 야유회를 간 생전의 채 씨 모습. 국립대전현충원·채종오 씨 제공
의사자 묘역 묻힌 ‘1호 의인’ 5일 국립대전현충원 의사상자 묘역 내 채종민 씨의 묘비 옆에 고인을 추모하는 꽃이 꽂혀 있다(왼쪽 사진). 채 씨는 2007년 이곳에 처음으로 안장됐다. 2004년 회사 동료들과 함께 야유회를 간 생전의 채 씨 모습. 국립대전현충원·채종오 씨 제공

2006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 의사상자 묘역이 조성됐다. ‘초인종 의인’으로 잘 알려진 안치범 씨 등 48명이 잠들어 있다. 2003년 동료를 구하려다 사망한 남극 세종과학기지의 전재규 연구원도 이곳에 묻혔다. 대전현충원 의사상자 묘역에 가장 먼저 안장된 이는 채종민 씨다. 매년 현충일이면 두 가족이 채 씨의 묘소를 찾는다. 채 씨의 유족과 이정건(가명·51) 씨 가족이다.

2006년 7월 27일 서울에서 버스 정비사로 일하던 채 씨(당시 35세)는 조카들과 전남 진도로 여행을 떠났다. 일행은 한 해수욕장에 차량을 세우고 물놀이를 즐겼다. 마침 이날 이 씨의 부인 김은정(가명·50) 씨도 세 딸과 해수욕장을 찾았다. 김 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막내딸 이모 양(당시 8세)이 탄 튜브가 강한 조류를 타고 떠내려갔다. 김 씨의 비명을 들은 채 씨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 양은 가까스로 구조됐다. 하지만 채 씨는 빠져나오지 못한 채 숨졌다. 같은 해 10월 정부는 채 씨를 의사자로 선정했다. 그리고 이듬해 4월 26일 대전현충원 의사상자 묘역으로 이장됐다.

“우리 아들의 명이 거기까지니 너무 죄책감 갖지 마라. 나에게 아들이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고 한 달 후 홀로 진도를 찾은 채 씨 어머니는 이 씨 부부에게 전화해 만나자고 했다. 그러고는 이 씨 부부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숨진 채 씨는 3남 2녀 중 셋째 아들이었다.

김 씨는 “채 씨 부모님은 원망의 말씀을 한마디도 하시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채 씨 부모는 이 씨 부부가 건넨 아들의 장례비용도 돌려줬다. 두 부부는 돈이 든 봉투를 가운데 놓고 눈물을 흘렸다.

얼마 뒤 같은 해 추석. 진도에 살던 이 씨 가족은 전남 장성군 채 씨의 집을 찾았다. 채 씨의 부모와 남매들은 이 씨 가족을 따뜻하게 맞았다. 이후 명절이면 이 씨 부부는 채 씨 집을 찾아 아들과 며느리 노릇을 했다. 또 직접 농사지은 햅쌀과 봄동을 매년 채 씨 집에 보냈다. 이 씨의 자녀들을 손녀처럼 여기던 채 씨 부모는 “공부 열심히 하라”며 학용품과 책가방을 선물했다.

이 씨 부부는 채 씨의 부모를 아버지 어머니로 불렀다. 채 씨 어머니는 2011년, 채 씨 아버지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채 씨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해 1년 반 동안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 씨 부부는 한 달에 두세 번은 시간을 내어 병원을 다녀갔다. 김 씨는 “아버지가 유난히 제 김치를 좋아하셨다. 병원에 계실 때 반찬을 이것저것 싸가도 늘 김치만 놓고 가라고 말하셨다”고 회상했다. 채 씨 어머니는 임종 전 자녀들에게 “이 씨와 친형제처럼 지내라”는 유언을 남겼다. 유언 이후 두 가족은 더욱 가까워졌다. 채 씨의 여동생은 이 씨를 친오빠처럼 여기며 집안의 대소사까지 의논할 정도다. 채 씨의 큰형 채종채 씨(52)는 “이 씨 가족과 혈육처럼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채 씨 가족을 만난 후 이 씨 부부도 ‘베푸는 삶’을 살게 됐다. 김 씨는 “우리가 받은 도움을 주변 이웃들에게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간 날 때마다 동네 봉사활동을 다닌다는 이 씨 부부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4개월간 집과 진도체육관을 오가며 봉사활동을 했다.

채 씨 부모는 떠났지만 두 가족은 지금도 명절과 현충일이면 대전현충원에서 만난다. 6일에도 어김없이 만나기로 했다. 채 씨의 둘째 형 채종오 씨(49)는 “그동안 자주 만나면서 사진 한 장 같이 찍은 게 없었는데 이번에는 함께 사진도 찍어볼까 한다”며 웃었다. 김 씨는 “나이가 더 들어 거동이 힘들어지기 전까지 계속 현충원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현충일#현충원#의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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