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점 국립대 특집]선도거점국립대가 대학 판도 바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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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치권에서는 ‘국토균형 발전’을 외치는 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국토균형 발전’은 대한민국 국민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명제다. 그러나 상당수 시민들은 선거철이면 돌아오는 상투적인 홍보문구를 대하듯 심드렁한 반응이다. 세종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집중 현상은 여전하고, 지방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갈수록 커져가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진정한 국토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지방 경제가 살아나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방 인재 육성, 지역 인재의 유출 방지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지방인재들은 어떻하든 수도권 대학과 기업으로 입성하려 하고 있고, 수도권 보다 더좋은 입지를 찾아 지방으로 옮기려던 기업들은 인재들이 지방근무를 기피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 지역 인재 배출의 핵심 역할을 하는 각 지방의 핵심대학들은 교육인프라의 수도권 집중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역 경제 살리기,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방 주요 대학들의 역량을 다시 강화시키는 국가적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부산대 전북대 제주대 등을 중심으로 활발히 펼쳐지고 있는 ‘거점 국립대’ 발전 노력이 주목을 받고 있다. 거점국립대는 국가가 광역지자체에 설립한 학생수 1만 명 이상의 대학으로 강원대, 경북대, 경상대, 충남대, 충남대, 전남대 등 총 9개가 있다. 당초 서울대도 거점국립대에 속했으나 2011년 12월 법인화 이후 거점국립대로 분류하지 않는다.

거점국립대의 경쟁력…뛰어난 교육 인프라

거점국립대는 한국 대학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교육기회를 균등 실현해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지역 발전과 국토균형발전을 가능하게 하고, 다양한 학과를 통한 보편적인 교육을 하는 등 권역의 대학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거점국립대의 공통점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비, 뛰어난 교육 인프라, 법과 제도가 대학의 생존 및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점국립대의 학비(실질 등록금)는 사립대의 2분의 1도 안 될 만큼 저렴하다. 정부가 7년째 등록금 인상을 억제하고 있는데도 사립대의 반값이 안 되는데 만약 등록금이 자율화 되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상당수 사립대의 경우 인문, 예술관련 학과가 한참 전에 없어졌거나 있어도 존속을 걱정해야 할 만큼 학내의 눈총을 받고 있다. 하지만 거점국립대는 인문학, 예체능 학과 등 대학 교육의 다양성을 유지 할 수 있는 학과는 물론이고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 첨단, 기초과학 분야의 학과까지 그 폭이 다양하다.

9개 거점 국립대의 평균 학과 수는 2016년 기준 89개로 웬만한 사립대(모집정원 2000∼3000명 사이 중규모 대학)의 2배 수준에 달할 만큼 학과의 종류와 수가 많다. 103개의 학과(전공)와 1개의 독립학부가 있는 부산대의 나노과학기술대학, 102개의 학과가 있는 전북대의 한국음악학과, 61개 학과 중 13%인 8개학과로 구성돼있는 제주대 인문대학의 존재는 거점국립대의 산업적, 문화적, 교육적 필요성을 알려주는 단적인 예다.

정부도 국립대가 갖는 역할과 기능을 확대 강화하기 위해 국립대학혁신지원사업(PoINT) 사업비를 전년 88억에서 210억원으로 대폭 증액했다. 부산대, 전북대, 제주대와 여타 거점국립대가 추진하고 있는 거점국립대의 특성화를 유도하고 강화 시켜준다는 의미다.

부산대의 전략은 연구중심대학으로 가는 것이다. 전호환 총장은 “연구중심대학은 기초교육을 강화해 대학이 강점 있는 분야를 더 발전시킬 수 있다. 국책연구기관까지 대학에 들어와 준다면 일자리 창출과 관련 산업 발전에도 이바지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학 차별화”라고 말했다.

전북대도 최근 제주대와의 연합대학 체제 구축을 위해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계절 학기를 통한 학생 상호 교류를 시작으로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학과를 공동 설립하는 등 지금까지 한국대학에서 없었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할 예정이다. 제주대는 이미 관광분야의 특성화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제주한라대, 제주관광대와 연계한 ‘Jeju One Campus Project‘를 추진 중이며 전북대와 함께 약대 유치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거점국립대를 ’응원‘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는 지방 인재의 수도권으로의 유출 방지와 지역고용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역인재 특별전형‘과 ’지방인재 채용목표제‘ ’지역인재 추천채용제‘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우수 지방인재의 서울 집중을 막기 위해 2015년 5633명에 달하는 지역인재특별전형을 2017년 1만169명으로 늘렸는데 이 안에는 의학계열 선발 비율을 39%에서 42%로 확대한 것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지방인재 채용목표제‘와 ’지역인재 추천채용제‘를 2021년까지 연장했고 지자체의 지방대학 육성을 유도하기 위해 시·도 자치단체 평가지표를 만들기도 했다. 또 작년부터는 지역인재의 실질적인 고용 확대에 영향을 주기위해 지역 공기업을 대상으로 고용영향 평가도 신설했다.

이남호 전북대 총장은 “거점국립대의 육성과 발전은 서울 및 수도권으로 쏠리는 많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대안’으로 내세울 만 하다”고 했다. ‘대학중심 지역발전전략’의 한가운데 거점국립대 발전과 위상강화가 전제되기에 이들 대학의 미래는 한국의 여느 대학들보다는 나은 편이다.

허향진 제주대 총장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서 요구되는 것은 ‘간판’ ‘기득권’ ‘점수’가 아니고 ‘융합’, ‘창조적인 사고’, ‘도전 정신’ 이다. 우수한 교육인프라를 바탕으로 교육을 시키고 있는 거점 국립대가 발전하면서 그 가치가 알려지는 것은 수도권 대학으로만 과도하게 몰리는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지역산업 발전의 핵심 역할

거점국립대는 지역 기반 산업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부산대의 경우 지역에 밀집돼 있는 조선, 화학, 철강, 자동차관련 기업과 연관된 학과들은 최고 수준의 교육 인프라 및 최고의 취업률을 자랑한다. 2015년 기준 취업률이 나노소재학과 94.1%, 나노메카트로닉스학과 92%, 화공생명 91.5%, 조선해양 91.2%다. 1954년 설립된 이후 1만 6000명의 동문을 배출해 한국 기계산업을 견인한 기계공학부는 동문 CEO만 330명에 달하며, 3년 평균 취업률 80%∼90%대를 오갈 정도로 높다.

조성제 부산상공회의소회장(부산대 조선공학과 66학번)은 “서울에 있는 대학만이 대한민국을 살릴 수는 없다. 부산대를 비롯한 거점국립대가 발전해야 지역 산학협력이 활성화 돼 지역이 살 수 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기업이 주위에 있는데 부산대와의 산학협력을 통해 관련 기술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좋은 인재를 양성해 주길 바란다”고 부산대에 거는 기대를 나타냈다.

전북대는 전라북도가 핵심 성장동력으로 설정한 탄소 및 농생명산업에 특화된 고분자·나노공학과와 화학과, 식품공학과가 순항 중이다. 전주의 문화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전북대의 한국적인 캠퍼스 조성 계획도 이 대학의 경쟁력을 높여줄 요소다. 익산에 독립 캠퍼스로 운영중인 수의과대학도 눈여겨 볼만하다. 수의과대학은 서울대 다음으로 많은 31명의 교수진이 무려 25만2821m²(약 7만 7천평)에 달하는 단독 캠퍼스에서 질 높은 교육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아시아 최고수준의 인수공통전염병 연구소가 있어 수의과대학의 명성을 더 높이고 있다.

제주대는 제주특별자치도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발전 전략을 수립해 시행 중이다. 교육부의 지방대학특성화 사업단 (CK-1)에도 선정된 ‘스마트그리드와 청정에너지 융복합산업 인력양성사업단’과 ‘개방형 ICT(정보통신기술) 융합과정지원사업단’은 제주특별자치도의 핵심 정책인 ‘탄소 없는 섬’과 ‘스마트 관광도시 구현’ 정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과도 연관이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사업단에는 제주대의 대표학과인 메카트로닉스공학, 에너지공학, 관광경영학과들이 참여하고 있다.

거점국립대는 장점에 비해 최근 십수년간 저평가되어온 측면이 있다. 수도권 대학으로의 묻지마식 지원과 거점국립대들의 변화와 혁신의 속도가 시장이 원하는 만큼 빠르지 않았던 탓도 있다. 하지만 선도적인 활동을 하는 부산대, 전북대, 제주대를 비롯한 거점국립대 대부분은 어떤 사립대 보다 열심히 뛰고 있다. 남은 것은 시장의 선택뿐이다.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정책국장 최승후 교사(문산고 3학년 부장) “거점국립대는 장점이 많아 단점으로 지적돼 온 ‘부족한 혁신 마인드’ ‘학과 이기주의’ ‘관료적 권위주의’를 덮고도 남는다. 거점국립대 구성원들이 수도권 대학과 경쟁한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나선다면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개 거점국립대 총장들의 목표




이종승 전문기자 urises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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