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원장은 안된다? 어린이집원장 ‘65세 정년’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7일 16시 37분


"10년 넘게 일궈온 어린이집을 관계법에도 없는 '65세 정년' 때문에 떠나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서울 강남구의 Y 구립 어린이집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김모 씨(66·여)는 지난해 12월 구청으로부터 원장직을 포기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2015년 9월 5년간 위탁체로 재선정되면서 무심코 썼던 확인서가 발단이었다. 당시 강남구는 김 씨에게 "만 65세 이후 원장을 교체한다는 확인서를 쓰지 않으면 재선정 절차를 밟겠다"고 요구했다. 위탁 공고나 심사 과정에서조차 없던 조건이었지만 김 씨는 어린이집 운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명했다.

문제는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 정년을 정해놓은 규정이 어디에도 없다는 점. 영유아보육법은 물론 강남구 조례에도 정년 제한은 없다. 구청은 영유아보육법상 '보육은 영유아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제공돼야 한다'는 규정을 근거 삼았다. 김 씨는 17일 "가르치던 어린이들이 졸업도 못했는데 원장더러 어린이집을 떠나라는 게 영유아의 이익을 고려한 것이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강남구청은 "보건복지부 지침 상 원장 연령이 만 65세가 넘으면 국고 보조 인건비 지원이 중단돼 2015년부터 위탁 계약 시 정년 제한을 명시하고 있다"고도 해명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인건비 지원 중단 상한 연령과 정년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지자체 조례에 원장 정년을 명시하고 있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조례에서 원장 정년을 만 60세로 정한 부산 부산진구에서는 정년을 넘은 원장들이 구청과 2년 가까이 소송을 벌이고 있다. 법원은 1심과 항소심에서 "조례는 효력이 없다"며 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비슷한 '60세 정년' 조례를 뒀던 전남 여수시에서도 2015년 만 60세를 앞둔 원장이 행정소송을 벌여 원장직을 유지하게 됐다. 여수시는 이듬해 조례에서 정년 규정을 없앴다.

일각에서는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직에 정년을 둬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국공립어린이집연합회 관계자는 "원장 일을 하려면 연륜과 경력이 중요하다보니 연령대가 높은 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2012년 육아정책연구소가 국공립 어린이집 512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원장의 33.5%가 50대 이상이었다. 학부모 이승희 씨(34·여)도 "어린이집에 믿고 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 보육자 연령이 왜 문제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만 65세가 인건비 지원 상한선인 만큼 후배 보육교사들을 위해 길을 터줄 필요도 있다"는 반론도 있다. 이서영 한경대 아동가족복지학과 교수는 "직종을 불문하고 종사자의 퇴직 연령을 정하지 않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한 구립 어린이집 원장은 "정년을 명시하되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고령화 추세에 맞춰가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영유아보육법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어린이집 원장 출신인 최도자 국민의당 의원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을 통해 적절한 상한 연령을 명시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지자체마다 제각각인 조례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논란이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상황은 주시하고 있지만 지자체별로 민감한 문제라 손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차길호기자 kil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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