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 중 가장 오랜 기간(2014년 9월~2016년 2월) 근무했다. 그동안 대통령의 '비선 진료', 청와대가 구입한 약품 용도 등 청와대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줄곧 침묵하던 그가 26일 오후 3시30분경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과 많은 국민은 의혹에 대한 속시원한 답을 기대했지만 그는 "모른다"는 변명만 반복했다.
서 원장은 "청와대 약품은 의무실장이 담당한다"며 청와대 약품 구입과 자신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자신이 주치의였던 시절 청와대가 '제2의 프로포폴'로 불리는 마취제와 태반주사 등을 구입한 것에 대해 "적어도 나는 구매를 요청한 적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자문의인 김상만 녹십자 아이메드 원장이 주치의 몰래 김 원장이 진료했다는 의혹에 대해 "보지 못해서 모른다"고만 답해 의혹만 키웠다.
김 원장은 서 원장의 전임 주치의 시절 최순실 씨 자매 이름으로 태반주사, 비타민 주사제를 대리 처방받아 박 대통령에게 주사했고, 박 대통령 혈액을 민간 병원으로 반출하기까지 했다. 국가 기밀을 외부로 반출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끼친 장본인이다. 그런 인물에게 대통령의 진료를 맡긴 주치의 역시 비선 진료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이날 서 원장은 일말의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청와대가 김 원장은 부르라고 요청해 진료하도록 했다"며 모든 책임을 김 원장과 청와대에 떠넘겼다. 대통령 주치의는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진료를 결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까지 지는 자리다. 주치의가 대통령이 어떤 진료를 받았고 어떤 약을 처방받았는지 모른다면 직무 유기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서 원장은 유독 '최순실 단골 성형외과'인 김영재의원 측을 돕는 데에는 적극적이었다. 그는 일면식도 없는 김 원장 가족회사의 의료용 실 연구 개발에 공동 연구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에 대해 "의료용 실 국산화를 돕는 게 교수의 본분이라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국민이 얼마나 있을 의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을 종합하면 서 원장은 주치의 시절 청와대 약품 구입 내역을 전혀 알지 못하고, 대통령 자문의가 주치의 몰래 불법적인 의료행위를 한 사실도 알지 못했던 '허수아비'주치의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는 이날 병원장직을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죄를 짓거나 판결을 받지 않았다"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치의 시절 벌어진 일에 대해 "모른다"고 책임을 미루던 서 원장을 믿고 따를 구성원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사퇴를 결심하는 자리였다면 그나마 보기 좋았을텐데" 이날 기자회견을 지켜본 다수의 서울대병원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대다수 국민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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