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경영합리화-청년 일자리-안전은 간 데 없고… 노조 손만 들어준 ‘지하철 통합’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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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두 지하철 노사 합의안 발표
강제 구조조정 없이 1029명 감축… 기성노조에 교섭권-근속승진 확대
“통합 위해 퍼주기식 합의” 비판

 서울메트로(지하철 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의 통합 합의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와 양 공사 노사가 합의한 ‘지하철 통합 관련 노사정 협의서(안)’와 ‘부속 협의서(안)’를 분석한 결과 노조에 유리한 조항이 대거 반영됐기 때문이다. “통합 성사만을 위해 일방적으로 노조에 ‘퍼 주기 식’ 합의를 했다”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인력 감축 없는 경영 합리화?

 앞서 서울시와 양 공사 노사가 참여한 노사정협의체는 11일 통합 합의안을 발표했다. 19∼22일 각 노조의 찬반투표에서 통합안이 통과되면 내년 초 지하철 1∼8호선을 통합 운영하는 ‘서울지하철공사’가 출범한다.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지방공기업이 탄생하는 것이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서울메트로 1·2노조와 도시철도공사 통합노조는 찬성 의견이라 통과가 확실시된다”라고 말했다.

 노사정 합의안에 따르면 통합 지하철공사의 인원을 4년 내 1만5674명에서 1만4645명으로 1029명 감축한다. 그러나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 퇴직에 따른 신규 채용을 제한해 자연적으로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는 통합의 명분인 경영 합리화에서 거리가 멀고 오히려 청년 일자리만 줄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소속 우형찬 의원(더불어민주당·양천3)은 “청년들이 원하는 건 수당이 아닌 지하철 근로자 같은 양질의 일자리”라며 “신규 일자리를 줄이는 방식을 고집스럽게 추진하는 이유에 대해 서울시가 제대로 소명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통합 후 노조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커질 것이란 예측도 있다. 노사정 합의안에는 ‘통합 공사에 과반수 노조가 없을 시 노사정협의체에 참여한 노조가 개별 교섭 또는 공동 교섭을 한다’는 조항이 반영됐다. 현재 서울메트로는 직원 9000여 명 중 6400여 명이 1노조, 2400여 명이 2노조 소속이다. 도시철도공사는 직원 6600여 명 중 6400여 명이 통합노조에 속해 있다. 서울메트로 1노조와 도시철도공사 통합노조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다. 서울메트로의 한 기관사는 “기성 노조에만 교섭권을 준 현행 합의안대로라면 강성인 민노총 산하 노조들의 힘만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구체적 내용 없는 안전 인력 확보

 양 공사의 통합 추진은 올 3월 노조의 반대로 한 차례 무산된 바 있다. 서울시가 내세운 통합 재추진의 명분 중 하나는 2호선 구의역 안전문(스크린도어) 사고 등에 따른 안전 인력 확충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안에는 안전 분야 인력을 추가로 늘리겠다는 선언적 내용만 있다.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안전직의 인원과 규모 등은 추가 논의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현재는 일정한 근속 기간을 채우면 직종별로 5·6급까지 자동으로 승진한다. 앞으로 출범할 통합공사에서는 근속 승진 대상이 4급까지로 확대된다. 근속 승진 제도는 공기업 방만 경영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코레일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E등급을 받자 노사 합의로 4급까지 시행하던 근속 승진제를 폐지했다. 올 8월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지방공기업 평가 결과에서 서울메트로는 5등급 중 4등급인 ‘라’(미흡)등급을 받았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하철 양 공사 통합은 적자 구조 해결 등을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통합 자체가 목표인 셈”이라며 “지금이라도 통합안에 대해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교섭권#근속승진#지하철#노사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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