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명인열전]“돈만 낭비하는 조기유학 심각… 후배들의 성공적 유학 돕고 싶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59> 청소년 유학 돕는 이환수 씨

이환수 이사장이 29일 광주국제기독학교에서 학생들의 수업시간에 쓰는 교재를 들고 미국 고등학교 공동학점 이수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한국 청소년들이 적성에 맞는 실용적 유학을 통해 더 넓은 세계적 감각과 능력을 갖추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형주 기자peneye09@donga.com
이환수 이사장이 29일 광주국제기독학교에서 학생들의 수업시간에 쓰는 교재를 들고 미국 고등학교 공동학점 이수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한국 청소년들이 적성에 맞는 실용적 유학을 통해 더 넓은 세계적 감각과 능력을 갖추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형주 기자peneye09@donga.com
“영어도 배우지 못한 채 돈만 낭비하고 애들까지 버리는 국력낭비 조기유학의 폐해를 너무 많이 봤습니다. 고향 후배들의 성공적인 유학을 돕고 싶습니다.”

 이환수 씨(71)는 전남 담양군 무정면의 한 야산 중턱에 자리한 대안학교 광주국제기독학교를 설립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민 1세대인 그는 미국 텍사스에 있는 화장품 회사 ‘케모리 랩’의 최고경영자(CEO)다. 한국에서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그가 미국 화장품 회사의 회장이라는 게 이색적이다.

 전남 보성군 회천면에서 태어난 이 씨는 1961년 광주서중과 1964년 광주제일고를 각각 졸업했다. 호남 명문 중고교를 졸업한 그는 군 생활을 하면서 참혹한 베트남전쟁을 경험했다. 1967∼1968년 백마부대로 알려진 육군 9사단 사병으로 참전했다. 베트남전쟁 경험을 묻자 그는 보훈 대상증을 보여주며 “백마부대 부대원 이야기는 소설가 박영한 씨가 쓴 소설 ‘머나먼 쏭바강’의 참상과 비슷하다. 전쟁을 말하기에는…”이라며 말을 아꼈다.

 군대를 제대한 이 씨는 1970년 9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다. 그가 미국 유학을 갈 때 주머니에 든 수백 달러가 전 재산일 정도로 가난했다. 대학 입학 이후 어렵게 영어를 배우며 전공 공부에 매달렸다. 힘든 유학생활에서 유일하게 의지했던 공동체는 한인 교회였다. 부인 고현정 씨(70)도 교회에서 만났다. 전남 담양 출신인 고 씨는 전남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다 미국 병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두 사람은 1975년 이역만리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텍사스 댈러스에 있는 남감리대학(SMU)에서 공학석사를 마쳤다. 그가 졸업한 전기공학과는 현지에서도 인기가 있어 컴퓨터 관련 회사인 인텔, HP 등에서 취업 제안이 들어왔다. 그는 1979년 반도체 회사인 모스텍에 입사해 연구실에서 6년간 근무했다. 연구원은 초봉이 2만3000달러로 안정적인 일자리였다. 이 씨는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한인 청소년 지도나 직장 없는 한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댈러스는 1900년대 초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정착한 한인들이 재이주를 많이 했던 곳이라 자원봉사를 할 일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영어를 못 하는 한인들을 돕다 오리엔탈자이언트라는 청소 인력회사를 꾸렸다. 청소 인력회사는 이후 직원이 500명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작은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 건물 청소는 토·일요일에 많이 하는데 청소용품인 왁스, 스프레이 등의 사용물량도 모른 채 금요일에 미리 구입해야 했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왁스, 스프레이를 만들 화학공장을 인수했다. 한 직원에게서 ‘로션, 영양크림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화장품까지 제조했다. 이후 자체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어 TV 광고 등을 하며 사업을 확장하다 한때 좌절하기도 했다.

 이후 ‘메리케이’ 등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의 제품을 주문 제작하는 회사 케모리 랩을 운영했다. 케모리 랩은 메리케이 등이 의뢰하는 제작방식, 원료비율대로 품질 좋은 화장품을 만든다. 현지 화장품 업계에서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깊은 신뢰도 얻고 있다. 현재 케모리 랩 운영은 둘째 아들(39) 부부가 맡고 있다. 

 그는 화장품 회사 CEO로 활동하면서 5·18민주화운동 북미주 대표, 댈러스 한인 상공회의소 회장, 댈러스 한인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고 김대중 대통령이 1982년 미국으로 망명했을 때부터 물신양면 지원한 인연으로 한미인권문제연구소 소장도 맡았다.

 미국에서 성공한 그는 40여 년 동안 동포들의 어려움과 애환을 함께 했다. 특히 한인 청소년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한인 청소년 지도 과정에서 조기유학을 온 많은 학생이 유학을 실패하는 폐해를 자주 접했다.

 “한국 학생들이 미국 북동부에 있는 하버드대, 예일대 등 명문 사립대인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더라도 고작 1학기도 못 채우고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애가 학업을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해 강행한 유학은 실패합니다.”

 이 씨는 한국 학생들이 성공적인 유학을 통해 꿈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돕고 싶어 2006년 처갓집인 담양군 무정면 성도리에 대안학교 광주국제기독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입학 대상 학생이 많은 수도권에 학교를 세우는 게 유리했지만 고향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종교적 신념으로 신학교인 광주바이블칼리지도 설립했다.

 2011년 승인을 받은 광주국제기독학교는 교사 8명, 강사 5명이 학생 중심의 소규모 맞춤식 집중교육이나 인성교육,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특히 국내 검정고시 과정 운영 이외에 미국 고등학교 공동학점 이수제도를 실시해 현지 고교 2학년 편입이 가능하다. 수업은 영어를 기초로 자율적인 학습이 강조되며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방학 때는 미국 교포 2, 3세대가 학교를 방문하는 교류캠프가 운영된다.

 광주국제기독학교는 특히 올해부터 미국의 한 대학과 제휴해 연간 2000만 원 정도의 저렴한 경비로 유학이 가능한 길을 열었다. 경제 여건이 열악한 지방 학생들이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인재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준비한 코스다. 전공은 간호학, 공학, 회계학 등 세 개다. 해당 미국 대학 관계자는 11월 21∼22일, 24∼25일 광주국제기독학교에서 입학설명회를 연다. 그는 “미국에서 아이비리그라는 대학 명성을 쫓기보다 실용주의 교육을 하는 것을 경험했다”며 “앞으로 한국 학생들에게 국제적 감각을 발휘할 수 있는 전공을 더 확대 연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년에 두어 번 미국에 들어갈 때를 빼고는 가족과 떨어져 학교 이사장을 맡으면서 봉사하고 있다. 그는 학교 두 곳의 운영비로 매달 3000만 원 정도를 지원한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헤쳐 온 자랑스러운 한국이 돈과 명예에만 빠져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청소년들에게 교육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과 넓은 세계관을 심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성공한 사업가로 두 아들과 손자 손녀 6명을 보며 미국에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그였다. 하지만 그는 한국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에서 예초기로 잔디를 깎는 것을 더 큰 행복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