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고시촌에 ‘레드카펫’ 깔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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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생 떠난 자리 예술인 찾아와… 소극장-작가 하우스 등 창작공간
작년 이어 11월 단편영화제 열려

지난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현 대학동·삼성동) 고시촌 일대에서 열린 ‘고시촌 단편영화제’에서 시민들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올해 영화제는 다음 달 4일부터 6일까지 고시촌의 카페와 서점 등지에서 열린다. 관악구 제공
지난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현 대학동·삼성동) 고시촌 일대에서 열린 ‘고시촌 단편영화제’에서 시민들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올해 영화제는 다음 달 4일부터 6일까지 고시촌의 카페와 서점 등지에서 열린다. 관악구 제공
 전교생이 모두 소(牛)인 학교. 모든 소는 ‘사람이 되기 위해’ 경쟁한다. 사람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성적을 얻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주인공(30619)은 항상 1등급을 유지하고 한 번도 학교 규칙을 어긴 적이 없는 모범생이다. 어느 날 9등급이라는 이유로 잡혀 나간 친구가 그녀의 점심 급식 스테이크로 나오게 되는데….

 이 황당한 이야기는 김수영 감독의 단편영화 ‘우등생’의 시놉시스다. 배우들이 소의 탈을 쓴 채 한국 청년들의 치열한 경쟁 현실을 묘사한 이 영화는 ‘고시촌 단편영화제’의 본선 진출작이다. 이 영화뿐만이 아니다. 다음 달 서울 관악구 옛 신림동(현 대학동·삼성동) 고시촌 일대에서 열리는 단편영화제에선 젊은 감독들의 개성 넘치는 단편영화들을 즐길 수 있다.

 고시촌 영화제는 ‘B급 영화’가 주인공이다. 허경진 고시촌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고시촌은 책과 노트 몇 권, 볼펜 몇 자루를 쥐고 고시를 통해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였던 곳”이라며 “고시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전까진 이들의 인생 역시 B급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런 영화제를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제의 장벽을 낮춘 덕에 젊은 감독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난해 제1회 영화제에서 103편이었던 출품작이 올해는 3배 규모인 328편으로 늘어났다. 중국과 태국 대만 등의 해외 영화 10여 편이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지난해 1회 고시촌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승주 감독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영화제의 본선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기회”라며 “지난해 수상을 계기로 해외 영화제 등에서도 연락이 오는 등 작품 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신림동 고시촌이 최근 젊은 예술인들이 모이는 ‘문화촌’으로 거듭나고 있다. 신림동 고시촌은 사법시험 합격자가 한 해 1000명에 달했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8만∼10만 명의 고시생으로 북적거리던 곳이었다. 그러나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등장과 각종 고시의 축소·폐지가 겹치면서 고시생 유입이 급감했다. 이로 인해 공실률 증가, 지역경제 침체 등 심각한 도시 공동화 현상을 겪었다.

 변화는 3년 전부터 시작됐다. 홍익대 인근과 가로수길 등 젊은 예술가들이 거주하며 활동하던 지역이 젠트리피케이션(동네가 번성해 사람이 몰리면서 부동산 가격이 올라 기존 상인과 주민이 떠나는 현상)으로 몸살을 앓으면서 이들이 대거 신림동 고시촌으로 옮겨온 것이다. 2013년 작가 10여 명이 함께 소설과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스토리텔링 작가 클럽하우스’를 선보였고, 지난해에는 대학로에서 활동하던 연극배우들이 직접 만든 극단 ‘광태 소극장’이 고시촌에 자리를 잡았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관악구는 20, 30대 인구가 전체 인구의 39.17%를 차지하는 전국 최고의 청년도시”라며 “젊은 예술인들이 고시촌에 편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창작 공간 제공 등의 정책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신림동#고시촌#영화제#소극장#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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