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 택시앞 선착순하는 예비군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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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훈련장 길목 구파발역 가보니

서울 은평구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근처에서 예비군 훈련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지 못한 예비군들이 택시에 합승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 은평구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근처에서 예비군 훈련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지 못한 예비군들이 택시에 합승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또 꽉 찼네, 찼어.”

 지난달 21일 오전 8시 서울 은평구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2번 출구 앞. 버스 한 대가 정류장에 들어서자 비스듬히 군모를 쓰고 군복을 헐렁하게 걸친 예비군 수백 명의 입에서 일제히 한숨이 나왔다. 초조하게 다음 버스를 기다렸지만 20여 명이 올라타자 금세 ‘콩나물 버스’가 됐다. 이들이 가려는 곳은 서울 지역 7개 자치구(종로구 서대문구 용산구 등)의 예비군 훈련장이 모여 있는 경기 양주시 북한산 입구다.

 훈련장으로 가려면 구파발역에서 양주시를 오가는 노선버스(704, 경기34)를 이용해야 한다. 아니면 자가용을 운전해야 한다. 이날 훈련에 참가할 예비군은 1300여 명. 그러나 200여 명만 노선버스를 타는 행운을 가졌다. 버스를 놓친 예비군 4년 차 김모 씨(28)는 “예비군 훈련 날이면 새벽같이 나와 버스를 타려고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이용한 적이 없다”고 푸념했다.

 버스가 지나간 자리를 대신한 것은 수십 대의 택시들이다. “네 명!”을 외치는 택시 운전사 앞으로 예비군 수십 명이 달려들었다. 입소 시간인 오전 9시까지 훈련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불참으로 처리된다. 이 때문에 구파발역에 모인 예비군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불법 합승을 하며 훈련장으로 향했다. 예비군 5년 차 이모 씨(28)는 “훈련이 끝나도 버스가 없는 상황은 똑같기 때문에 또 합승을 해야 한다”며 “예비군 훈련을 받기 위해 왕복 차비로만 1만 원씩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예비군 훈련 날마다 서울 지역 곳곳에서는 ‘입소 전쟁’이 벌어진다. 대부분의 예비군 훈련장이 주거 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격 소음 때문에 훈련장은 외곽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방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교통 편의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직장인이나 학생이 대부분인 예비군은 자가용이나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특히 서울 자치구 25개 중 7개의 예비군 훈련장(교현 노고산 지축)이 모여 있는 경기 양주시 북한산 일대는 불편이 심각하다. 이곳에서 훈련을 받는 인원은 연간 11만 명에 달한다. 거의 매일 훈련이 열리는 3∼11월에는 하루 평균 1400여 명의 예비군이 훈련을 받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그러나 훈련장으로 연결된 대중교통은 버스 노선 2개밖에 없다.

 관련 기관들은 이런 문제를 알면서도 예산 부족 등으로 해결이 어렵다는 의견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현재 예비군 훈련 보상비(교통비 급식비)로 책정된 예산이 1년에 516억 원에 불과해 지원을 더 늘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예비군을 위해서 버스를 증차하면 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기본적으로 예비군 문제는 국방부가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예비군#택시#훈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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