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조릿대 제거하라” 특명 받은 말들 한가로이 잎 뜯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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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시범 방목현장 가보니

한라산국립공원을 뒤덮으며 종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는 제주조릿대를 제거하기 위해 말 방목이 시범 실시되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말들이 제주조릿대잎을 뜯어먹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한라산국립공원을 뒤덮으며 종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는 제주조릿대를 제거하기 위해 말 방목이 시범 실시되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말들이 제주조릿대잎을 뜯어먹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7일 오후 한라산국립공원 어리목 탐방로에서 서쪽으로 500m가량 들어간 해발 1620m 만세동산 주변. 목장처럼 철조망이 둘러쳐진 가운데 제주마(일명 조랑말) 2마리와 한라마(더러브레드와 제주마 교잡종) 2마리 등 4마리가 제주조릿대 잎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들 말은 ‘제주조릿대를 제거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지난달 22일과 24일 산 속으로 올라왔다.

처음에는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애를 먹다가 4, 5일이 지나면서 제주조릿대 잎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현장 관리인 2명이 매일 하루 60L의 물을 공급하고 있으며 부족한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소금과 미네랄 등을 먹이고 있다. 보름가량 지나면서 말들이 현지에 적응한 모습을 보였다. 위로 솟은 딱딱한 잎보다는 자신들의 말발굽으로 밟아서 다소 부드러워진 잎을 먼저 먹고 있다.

야위었던 배가 어느새 불룩해졌다. 무엇보다 시원한 바람과 20도 내외의 낮은 기온 등으로 진드기로부터 해방된 것이 말들로서는 행복이다. 저지대 목장에서는 말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몸에 달라붙는 진드기 때문에 고충이 크다. 심하면 진드기 때문에 어린 말이 죽기도 한다. 관리인 양모 씨(54)는 “처음에는 제주조릿대를 먹지도 않고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을 찾았다”며 “지금은 말들이 마음껏 포식하며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한라산을 뒤덮어 다른 식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제주조릿대를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제주조릿대 관리 방안 연구’에 착수했으며 구체적인 실행 방법으로 ‘말 방목’을 선택했다. 문화재청의 현상 변경 허가를 받은 뒤 제주조릿대가 들어선 1만 m²에 철조망을 둘렀다. 털진달래, 산철쭉 등 다른 식생이 거의 없고 제주조릿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곳이다. 이 일대는 일명 ‘망동산’으로 과거 소나 말 방목이 허용된 시기에 ‘말테우리’(목동을 뜻하는 제주어)들이 망을 봤었다. 등산로에서 방목 현장을 확인할 수 없고 2.5km가량 떨어진 윗세오름 대피소나 전망대에서 육안으로 가물가물하게 보인다.

이 연구는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가 맡아 2020년까지 진행한다. 올해 방목은 10월 초까지 이뤄지며 내년부터는 4월부터 9월 말까지 실시된다. 말 방목과 인위적인 제거 등의 효과를 비교하기 위해 해발 1750m 장구목 일대 1만 m²를 시험 지역으로 정해 사람이 직접 제주조릿대를 베어냈다. 새로운 식물상의 유입과 제주조릿대 변화 등을 연구해 적정한 관리 방안을 찾는다.

제주조릿대의 번성은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높아진 데다 제주조릿대를 먹어치우던 소와 말의 방목이 1980년대 중반부터 금지됐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제주조릿대를 억제하기 위해서 말 방목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이번에 시범 방목이 시도된 것이다. 제주조릿대는 30여 년 전까지 해발 600∼1400m에 드문드문 분포했지만 지금은 국립공원 153.3km²의 90%를 잠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유산본부 정세호 생물자원연구과장은 “제주조릿대는 줄기뿌리가 땅을 단단히 움켜쥐면서 번식하기 때문에 다른 식물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해 한라산의 종 다양성을 위협하고 있다”며 “이번 연구는 귀중한 한라산 자연 자원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인위적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뜻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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