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제충만]내게도 찾아온 직장인 사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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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옹호팀장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옹호팀장
한 친구가 컵밥집을 열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멀쩡히 직장 잘 다니던 친구가 왜 갑자기 컵밥집인가 싶어 오랜만에 연락을 해봤다. 친구는 곧 있으면 개업을 앞두고 있는데 한번 놀러오라는 말과 함께 명대사를 날렸다. “너 아직 거기 다닌다고 했지? 그냥 거기 있어. 회사 안은 전쟁터, 밖은 지옥, 여기가 진짜 헬조선이다야.”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살 만한가 보다 싶어 농을 주고받다가 친구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적성이 안 맞는지 재미도 없고 생각보다 돈도 안 벌리고 해서 때려치우고 나왔어.”

나는 석 달 후면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만 4년이 된다. 올해 들어 이직을 하거나 아예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는 또래 친구들의 소식이 왕왕 들려온다. 한 조사 결과를 보니 직장인들은 첫 직장에서 평균 3년 동안 근무하고 이직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고민이 많아지는 심리적 불안 상태를 일컫는 ‘직장인 사춘기’는 백이면 백, 입사 4년 차 이내에 찾아온다고 한다. 지금이 딱 방황할 시기인가 보다.

또 다른 친구는 직장을 옮겼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너무 경쟁적인 회사 분위기를 탓하며 “아내분 생일날 집에 잠깐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일하는 부장님을 본 적이 있어. 내가 10년 후에 딱 부장님 같은 모습일 거라 생각하니까 오래 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싹 사라지더라”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3년 차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직장 생활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로 3년 차를 꼽는 조사도 있었다. 아무래도 직장에 들어온 지 3년쯤 되면 여러 가지 이유로 고민이 많아지나 보다. 취업 때야 일단 바늘구멍부터 뚫자는 심정으로, 입사 초기에는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가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내게도 직장인 사춘기가 찾아왔다. 얼마 전 참가한 한 심포지엄에서 36년간 일본의 모험놀이터를 일군 연사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 우물만 판 대가의 깊이 앞에서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내가 하는 일이 여러 아동권리 침해 이슈에 대응을 하는 것이다 보니 고질적인 깊이에 대한 갈증이 있는데 그 부분을 건드렸나 보다. 더군다나 “제충만 씨는 사람들과 금방 친해지지만 오래가지는 못하는 거 같아요”라는 말을 직장동료에게 듣자 나같이 대인관계가 부족한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는 게 과연 적성에 맞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 일에 대한 열정도 옛날만 못한 것 같은 내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기도 한다.

더욱 씁쓸한 것은 내가 일하는 직장이 비정부기구(NGO)라서 그런지 고민을 털어놓아도 별반 공감을 얻지 못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사명감으로 해야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나도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어떤 날은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고, 일요일 밤이 오면 무섭기도 하다. “제충만 씨도 이제 대한민국의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 있는 거예요. 환영해요”라며 우스개로 격려를 받은 게 가장 큰 위로였다.

얼마 전 캄보디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직장인 사춘기’에는 여행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런 상태와 고민들을 그냥 인정하고 지켜보기로 했다.

내 어린 시절 사춘기는 언제 왔는지 모르게 왔다가 많은 생채기를 남기고 또 언제 끝났는지 모르게 갔다. 비록 그 시간만큼은 혼란스러웠지만 후에 돌아보니 그만큼 더 풍성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던 고마운 시절이었다. 언젠가는 지나갈 나의 ‘직장인 사춘기’도 스스로를 돌아보며 하게 되는 많은 고민으로 인해 더욱 풍성한 나 자신과 직장 생활을 만들어 주는 데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해 본다.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옹호팀장
#3년 차 증후군#직장인 사춘기#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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