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이어진]외국인 보호와 5세대 인권을 향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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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의사
이어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의사
니체가 ‘신(神)의 죽음’을 이야기하자 ‘신의 뜻’은 사라지고 ‘나의 뜻’만 남았다. 비로소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은 한 명 한 명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외롭고 피로해졌다.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약속을 대신해 건강과 무병장수는 이 시대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특히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보호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면 그들의 건강권을 생각하게 된다.

“의사님, 의사님!” 생각에 잠겨 감시실과 보호실 사이 복도를 막 지나는데, 몇 발짝 떼지 않아 나를 부르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바쁠 땐 짐짓 못 들은 척도 해보지만, 지나쳤다가도 괜히 마음이 쓰여 다시 돌아올 걸 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네. 닥터 찾았어요? 무슨 일이에요?” “나 여기 눈 아파. 괜찮아요?” “어디 봐요.” “음, 눈에 실핏줄이 터졌네요.”

이 외국인 당사자에게는 불법체류로 단속되어 보호실에 수용되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다. 낯선 잠자리, 식사, 생면부지의 사람들과의 단체생활. 여기에 불확실한 미래, 금전문제 등 다른 미해결 상태의 문제가 겹치면 스트레스 수준은 훨씬 높아진다. 그렇기에 규칙적인 실외 운동과 각종 활동 프로그램, 고충 상담을 제공해야 한다. 그들이 요청하는 의료서비스와 더불어 아픈 곳이나 스트레스 원인을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좋아지는 것 보게 사진 좀 찍을게요. 괜찮아요?” “예.” 찰칵. 찰칵 찰칵. “어, 의사님 폰 화면, 선 많이 있어요.” “응. 얼마 전에 떨어뜨렸어요.” “용산 가요. 거기 폰 많아요.” “고마워요. 그런데 용산은 여기서 꽤 멀어요.”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고맙다. 같은 방 친구들도 한마디씩 거든다. 한국 휴대전화가 좋다는 칭찬에, 내가 아는 어디 가면 싸게 해준다는 둥…. 멀뚱멀뚱 지켜보고 있던 눈동자들은 작은 틈을 비집고 금세 정보 제공의 주체가 된다.

“스마트폰 쓰고 싶죠?” “아니에요. 공중전화 하면 돼요.” 경과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단순히 보고 괜찮다는 말로는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이다. 내 몸에 대해 알 권리, 본인의 건강 정보, 4세대 인권이라고 하는 정보 인권(디지털 인권)도 최대한 존중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보가 있어야 무엇이라도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법이다. 이제 스마트폰 음성번역기가 활약할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접근권을 당연한 기본권으로 생각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5세대 이동통신 사업화와 궤를 맞춰, 정보 제공뿐 아니라 공간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가상현실 사용권이나 홀로그램, 웨어러블 기기 사용에 대한 권리가 추가될지도 모른다.

시간이 더 지나면 아바타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시공간으로 확장된 인간에 대한 기본권도 당연한 것으로 이야기하게 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육체를 벗어날 권리(육체 선택에 대한 자기결정권)를 주장하는 보호외국인이나, 신체에 이식되어 떼어낼 수 없는 정보통신기술(ICT) 장비, 로봇 장비를 장착해 들어오는 보호외국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또 가상현실이나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한 외국인 보호나 감시 시스템은 어떤 기준으로 마련해야 할까.

인권은 인간 존재 그 자체로 부여되는 기본권들의 조합이다. 생명과 안전의 보장, 기쁨이나 즐거움과 같은 감정을 누릴 권리들이다. 정보 제공 또한 국가와 사회라는 제도에 따라 불가피하게 제한되는 여러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장치 중 하나다. 가장 근본적인 권리가 절실한 곳이 바로,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은 혁신의 씨앗이 필요한 곳이다.

주말, 용산역에 내려 오랜만에 찾은 전자상가는 옛 모습 그대로다. 다만 매장과 길거리에 부쩍 많아진 외국인들. 문득 ‘스마트 인권센터’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4세대 ‘정보 인권’의 연구실이자 5세대 새로운 인권 이슈를 발굴하는 광산과도 같은 곳. 교체한 스마트폰 액정이 안내하는 대로 전자상가를 나와 지하철로 향하는 내리막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좀 더 적극적인 정보 제공과 소통, 좀 더 적극적인 진료가 보호외국인들의 한 손에는 사람의 권리(right)를, 다른 한 손에는 빠른 귀향 및 합법 체류 선택지(left)를 선물로 줄 것이다.

이어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의사
#니체#신의 죽음#외국인#불법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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