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우지희]길 잃은 곳이 바로 새 출발점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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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한동안 뜸했던 지인에게서 연락이 오면 무척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도 든다. 며칠 전 만났던 선배 역시 그랬다.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관두고서 야심 차게 사업을 시작했던 그였는데, 순조롭게 자리를 잡아가나 싶었던 일이 결국 실패로 이어져 몸도 마음도 자산도 피폐해졌다는 얘기를 힘없이 털어놓았다. 학교 다닐 때부터 똘똘하고 야무져 늘 존경하고 우러러보던 선배가 그토록 상심한 모습은 처음이라 듣는 내내 심란했다. 자신이 처음 계획했던 것과는 너무 달라져 버린 상황이 혼란스럽고, 거기에 대해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에 기진맥진해 버렸다는 하소연이었다.

여태껏 직간접적으로 겪어온 실패들 중에서도 꽤나 크고 무거운 이야기라 어떻게 위로를 할까 고민하다가 신혼여행 때의 일이 생각났다. 수년 전 남편과 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의 작은 해안 마을로 허니문을 가기로 했는데, 그곳의 여행 관련 정보가 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고 까다로운 여행지라는 것이 오히려 도전 의식을 불타오르게 했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다는 한국인 관광객이 없다는 점만으로도 “이보다 더 허니문으로 안성맞춤인 곳은 없다”며 더욱 들떴다.

그날 우리는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행선지로 향했다. 다행히도 서둘러 아침밥을 챙겨 먹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바쁘게 움직인 덕에 역에 넉넉하게 도착했다. 여기까지는 신나는 여행의 출발이었다. 그러나 역에서 기차를 내려 버스로 갈아타려고 정류장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그리고 손짓발짓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우리는 목적지로 가는 유일한 도로가 산사태로 무너져 그 길을 지나가는 모든 버스가 운행을 중단했음을 알게 되었다.

해는 이미 저물어 캄캄한 밤이었고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과 도로가 복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 시간을 합치면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름도 처음 듣는 이탈리아의 경유지 도시의 길바닥에서 첫날밤을 보내게 된 상황이 화가 났다. 그리고 목적지에서 예정되어 있던 일정들을 모두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 억울했다. 너무나 어이없고 짜증나는 상황이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었고, 우리는 그냥 한바탕 웃고 재난 특수를 맞아 어마어마한 바가지요금을 부르던 택시를 잡아탔다. 그러고 무너진 도로 대신 우회도로를 돌고 돌아 새벽녘에서야 겨우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여행에서 길을 잃었을 때, 버스가 끊기고 일정이 엉망이 되었을 때, 그저 새롭게 출발하는 일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에 이후의 여행은 원래의 계획을 수도 없이 변경해야 했고 심지어 낯선 타국에서 아주 많이 길을 잃기도 했지만, 언제까지나 무너진 도로 탓을 하며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고, 또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가 책임져야 할 새로운 문제를 마주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다시 출발하는 것뿐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얻은 값비싼 교훈은 앞으로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 올바른 방향과 일관된 가치관만 있다면 길을 잃어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깨달음이었다. 다시 시작했을 때 그곳은 처음 계획과 다른 곳이었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곳에서 행복했음을 오래도록 기억하자고 약속했다.

그날 밤 오래전 험난하고 고생투성이였던 그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며, 선배에게 일러주고 싶었다. 단순히 ‘사업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씩은 넘어지는 거지 뭐’라는 피상적인 위로 대신 “선배 자신을 믿고 무엇이 되었든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렇게 일어서 또 한발을 내딛는 모습이 선배 자신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응원해온 주변 사람들에게도 근사한 감동을 줄 것”이라고. 물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사업 실패#신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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