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쌍용중 학생부실은 스승과 제자의 사랑과 감사가 만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재봉틀의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소리와 함께
학생들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재봉틀샘’ 김철회 교사(왼쪽)는 학생들의 해진 교복과 아픈 마음을 모두 고쳐준다. 15일은
제35회 스승의 날이다. 천안=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다른 선생님보다 훨씬 크고 빠른 주인님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제 가슴도 쿵쿵 뜁니다. 쉬는 시간 10분 만에 바지 두어 벌 고칠 수 있게 바늘을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할 테니까요. 가끔은 바지뿐 아니라 ‘천안쌍용중’ 로고가 박힌 재킷을 수선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다른 선생님은 ‘수학샘’ ‘담임샘’이라고 부르던데 이상하게도 제 주인에게는 ‘재봉틀샘’이라 부릅니다. 김철회(62)라는 이름도 있고, 38년간 과학을 가르치면서 그중 14년 동안은 그렇게 무섭다는 학생생활지도부장을 했는데 말이죠. 아마 쉬는 시간마다 나, 재봉틀로 학생들 교복을 고쳐 주기 때문인가 봅니다.
주인을 만난 이후 제가 바지 위에 일정치 않은 간격으로 ‘발자국’을 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떤 학생은 돌아서면서 친구에게 “야, 재봉틀샘이 옷 수선 가게 주인이었으면 돈 엄청 벌었겠다. 재봉질 실력 대단하지 않냐”고 말하더라고요. 주인은 학생들의 “고맙습니다”라는 말, 하트가 그려져 있는 쪽지, 그거면 된다고 합니다. 그때면 주인의 입꼬리는 지그시 올라갑니다.
“요놈아∼ 바지 밑단도 너덜거린다!”며 갑자기 주인이 저를 멈추고 바늘구멍을 보며 눈살을 찌푸릴 때가 있습니다. 이상합니다. 학생이 주머니에 넣어둔 종이에는 분명 ‘왼쪽 엉덩이’라고만 쓰여 있는데. 기어코 주인은 또 직접 바늘에 실을 꿰네요. 바지 밑단은 직접 새발뜨기(단을 꺾어 접었을 때 가장자리를 밑감에 고정시키는 바느질법)를 해야 튼튼하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5년 전입니다. 오랫동안 잠에 빠져 있던 저는 어디선가 ‘훅’ 불어오는 입김에 눈을 떴습니다. 주인이었어요. 가사실습실에 있던 저와 친구 34명 몸 위에는 늘 뽀얀 먼지가 있었어요. 저를 만져주는 교사도 학생도 없었죠. 요즘 세상에 누가 재봉틀을 쓰겠어요.
주인은 저를 학생부실의 한구석으로 데려왔어요. 좁은 학생 책상 위라 갑갑했죠.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 후…. 주인은 틈만 나면 저를 돌려댔어요. 순식간에 제가 있는 방은 세탁소가 됐지요. 학생들이 맡긴 교복, 수선이 다 된 교복, 졸업생들에게 받아 말끔하게 수선한 뒤 새 주인을 기다리는 교복들이 나란히 걸렸어요.
이 학교에서는 교복을 안 입으면 학생식당에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운동장에서 뛰놀다 바지가 뜯어진 학생들이 끊임없이 몰려올 수밖에요. 하루에 아무리 못해도 10벌이에요.
여기 3학년 남학생 교복 엉덩이 위에는 거의 다 제 발자국이 나 있어요. 다들 교복을 여러 벌 살 만큼 여유로운 건 아니니까요. 3학년쯤 되면 엉덩이 부분이 닳죠. 밑단이 뜯어진 치마나 바지, 단추가 떨어진 셔츠도 제 단골손님입니다.
주인이 ‘재봉틀샘’이 된 건 15년 전이래요. 천안북중에서도 학생부 일을 했던 주인은 교복을 안 입고 온 학생을 지도하다 “교복이 세탁소에 있는데 어떡하라고요”라는 얘기를 들었다는군요. 주인 머릿속에 재봉틀이 떠올랐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사셨다는 낡은 재봉틀이었죠. 주인은 금방 혼자 배웠대요. 나팔바지를 샀다가 혼나서 맘보바지로 만들기도 했죠. 결혼하고 나서는, 짧아진 딸 치마에 레이스를 덧대줬대요. 그래도 그냥 남자로서는 보기 드문 손재주라고만 여겼죠.
시작은 ‘내가 교복을 바로 고쳐주면 애들이 교복 못 입는다고 못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네요. 하지만 주인과 만난 제 친구가 셋이나 돼요. 저처럼 가사실습실에서 잠만 자던 친구들을 데려다 일을 시킨 거죠. 학교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15년간 방학을 빼고 하루 10벌이면 얼마나 많은 교복을 수선한 걸까요? 주인은 세 본 적이 없다는데 저도 상상이 안 되네요.
주인이 말하면 학생들은 교문이나 복도에서 멈춰 서곤 해요. 학생부 선생님이 부르면 무섭지 않겠어요? 그런데 여기 학생들은 주인 앞에 서면 빙긋이 웃어요. 말도 많아져요. “공부하기가 너무 싫어요.” “엄마 아빠는 저를 이해 못해요.” 주인은 손으로는 저를 바삐 돌리고 입으로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합니다. 학생뿐 아니에요. 주인의 동료들도 학부모들에게 시달린 이야기, 학생에게 입은 상처를 털어놓고 갑니다. 후배들에게 주인은 이렇게 얘기해요. “학생 무서워하면 교직에 못 있어. 학생이 ‘선생님이 최고’라는 생각을 갖게 지식도, 사랑의 마음도 더 쌓아. 교직생활 38년 넘게 했지만, 선생님 된 거 한 번도 후회 안 했어.”
요즘 제게 걱정이 생겼습니다. 3개월 뒤 다시 가사실습실로 갈 것 같아요. 주인이 정년퇴직이란 걸 해야 한답니다. 그러면 영원히 헤어지게 되겠죠. 13일 받는 충남 최우수 모범교사상도, 지금까지 받은 교육부장관 우수교사 표창, 정부모범공무원상, 과학기술부장관상, 충남도교육감상도 부족할 겁니다. 내 주인 김철회 선생님이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증명하기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