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만에 찾은 삼국유사…공소시효 착각해 경매 내놨다가 덜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1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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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 아름다운 아내를 빼앗긴 처용의 노래….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들을 숱하게 담고 있는 역사서 ‘삼국유사’의 가장 오래된 현존 판본이 1999년 도난당했다가 17년 만에 돌아왔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도난당한 ‘삼국유사 권제2 기이편’을 15년간 몰래 숨겨온 문화재 매매업자 김모 씨(63)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삼국유사는 대전의 한 국립대 교수가 집에 소장하고 있었지만 1999년 1월 도난당했다. 이 삼국유사는 보물로 지정된 ‘성암고서본’과 같은 목판본이지만 인쇄상태는 더 깨끗해 현존하는 판본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목판은 여러 번 찍을수록 닳기 때문에 일찍 찍은 판본이 인쇄상태가 좋다. 당시 경찰은 전국에 장물품표 1만 부를 배포하며 1년 9개월간 수사했지만 결국 행방을 찾지 못했다.

약 1년 뒤인 2000년 1월 삼국유사는 장물업자 김 씨의 손에 들어갔다. 김 씨는 표지가 없던 판본에 가짜 표지를 만들어 붙이고 과거에 소장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적은 마지막 쪽을 떼어버렸다. 김 씨는 15년 동안 네 번 이사를 다니며 삼국유사를 비롯한 고서(古書)들을 거실, 안방, 파우더룸의 천장에 만든 ‘비밀 수납공간’에 숨겨놓았다. 종이와 에어캡, 오동나무 상자로 포장도 꼼꼼히 했다.

지난해 11월 5일 김 씨는 삼국유사 도난의 공소시효(특수강도 15년)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고미술품 경매업체에 삼국유사를 경매에 출품해달라고 의뢰했다. 1억2000여만 원의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김 씨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문화재보호법에서 은닉죄는 은닉한 순간이 아니라 은닉상태가 끝나는 순간, 즉 지난해 11월 5일부터 공소시효를 계산한다는 사실이다.

경매업체는 올해 1월 20일 삼국유사를 3억5000만 원에 이르는 경매가에 출품해 화제를 모았다. 원소장자인 교수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하지만 교수의 딸의 신고로 해당 경매품이 문화재청에 도난문화재로 등록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김 씨는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경찰조사에서 김 씨는 처음에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다가 나중에는 2006년 사망한 대전의 한 골동품상에게서 다른 고서들과 함께 9800만 원을 주고 매입했다고 번복했다. 경찰은 “도난·도굴된 문화재는 이번처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시장에서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며 문화재 절도의 공소시효를 늘리거나 폐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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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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