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찰차서 4차례 농약 마셔도 모른 경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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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출소로 연행되던 60대 음주운전 용의자가 경찰 순찰차 안에서 농약을 마시고 숨진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동행하던 경찰은 임의동행 수칙을 어기고 용의자를 순찰차 뒷좌석에 혼자 태워 사고를 막지 못했을 뿐 아니라 순찰차 안에서 용의자가 음독했다는 사실을 부인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31일 경남지방경찰청과 밀양경찰서 등에 따르면 삼랑진파출소 소속 A 경위와 B 경위는 설날인 2월 8일 오후 “도로 위에 취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5분 거리의 현장에 도착했다. 쓰러져 있던 주민 C 씨(67)는 경찰이 출동하자 일어난 뒤 술 냄새를 풍기며 자신의 차량 근처에서 소란을 피웠다. 경찰은 음주측정을 하려 했지만 C 씨가 완강하게 거부한 데다 도로에 성묘 차량이 많아 용의자를 파출소로 데려가 음주 여부를 확인하기로 하고 C 씨를 순찰차에 태웠다.

두 경찰관은 C 씨를 순찰차에 태울 때 소지품 검사를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뒷좌석에 C 씨를 혼자 남겨둔 채 자신들은 앞자리 운전석과 조수석에 탔다. 경찰 임의동행 수칙에는 동의 없이 몸수색을 할 수는 없지만 용의자를 순찰차에 태울 때는 뒷좌석에 앉히고 반드시 그 오른쪽에 경찰관이 동승해 감시하도록 돼 있다.

파출소에 도착한 경찰은 C 씨에게 다가가다 그의 손에 뚜껑이 열린 농약병이 들려 있던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곧바로 C 씨를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겼지만 3일 만인 2월 11일 숨졌다. 경찰은 사건 당일 C 씨의 차에서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서와 농약병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출동하기 전에 C 씨가 이미 농약을 마신 것으로 추정했다. C 씨가 마신 농약은 맹독성이 강해 지금은 생산되지 않는 제초제 ‘크라목손’이었다. 숨진 C 씨는 평소 지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당초 C 씨가 순찰차 안에서 농약을 마신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들의 취재가 본격화하자 뒤늦게 순찰차 블랙박스에 용의자가 4차례 음독한 영상이 담겨 있다고 시인했다. 이에 대해 밀양경찰서 측은 “경남지방경찰청에 ‘용의자가 순찰차 안에서 음독한 것 같다’고 즉각 보고했다. 은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밀양경찰서는 C 씨가 숨진 뒤 48일이 지난 3월 30일 징계위원회를 열고 용의자 감시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A 경위에 대해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리고, 운전대를 잡은 B 경위는 불문경고 처분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조직 내부에서조차 “늑장, 솜방망이 징계”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청문감사 업무를 맡고 있는 한 경찰은 “이 정도 사안이라면 최소한 정직 이상의 징계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경찰공무원의 징계는 파면 해임 강등 정직 등 중징계와 견책 불문경고 등 경징계가 있다.

밀양=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순찰차#농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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