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에게 “선생 목소리가 더 커!” 소리 들은 교사 그 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31일 17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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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한 고교에서 근무했던 A 교사(여)는 지난해 8월 명예퇴직을 하고 보험설계사 일을 하고 있다. 평생을 몸 바친 교직을 그만둔 건 지금도 떠올리기 싫은, 학생에게서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2014년 A 교사는 수업 중 휴대전화를 만지며 떠드는 학생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선생 목소리가 더 시끄러워. 선생이나 조용히 해”라는 이야기가 돌아왔다. 이 학생이 다른 학생의 동의까지 구하자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A 교사가 “밖으로 나가라”고 하자 이 학생은 의자를 집어던졌다. 의자 다리가 A 교사의 얼굴을 가격했다. 의자를 막는 과정에서 A 교사는 왼쪽 팔까지 다쳐 수술 뒤 7주간 치료를 받아야 했다.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A 교사는 승소했다. 하지만 더 이상 학생들 앞에 설 자신이 없었다.

내년부터는 이처럼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교권침해를 당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교원들이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교원치유지원센터’에서 전문적인 심리상담과 법률자문을 받을 수 있다. 교권침해로 상처받아 학생이나 학부모 앞에 떳떳하게 서지 못하고 극단적으로는 교단에서 나가게 되는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교원들이 자신감을 가져야 교권침해 문제도 줄일 수 있고 공교육도 제대로 된다는 취지도 있다.

교육부는 31일 “내년 상반기까지 전국의 모든 교육청이 교원치유지원센터를 지정·운영한다”며 “이에 앞서 올해는 대전 부산 대구 제주 등 4개 교육청에서 교원치유지원센터를 시범운영해 우수 모델을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교원치유지원센터를 시범운영하는 4개 교육청은 사업 공모를 한 10곳 중 선정됐다. 이들 교육청에는 총 3억 원이 지원된다.

교원치유지원센터는 교권침해를 당한 교원에게 상담과 법적조치 등 적절한 대응법을 알려주고 학교에 잘 복귀할 수 있도록 각종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점센터다. 각 학교가 신청하면 직접 학교에 나가거나 교원치유지원센터에서 교권침해 예방교육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교원치유지원센터는 지역 내 의사 상담심리사 변호사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교권침해를 당해도 마땅히 이야기할 곳이 없어 속으로만 끙끙 앓는 교원이 많았다. 각 교육청의 교권담당자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업무협약을 맺은 일부 상담가에게 연결해주는 게 전부였다.

교육청에 교권침해를 신고해도 크게 도움 되는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인지 교육부가 각 교육청을 통해 접수한 교권침해 건수는 2010년 2226건, 2011년 4801건, 2012년 7971건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2013년 5562건, 2014년 4009건, 2015년 3402건으로 하락세다. 교육부 내에서도 “2012년 나온 교권보호종합대책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도 해석되지만 솔직히 이해가 안 되는 수치”라며 “건수는 줄었어도 교원들이 체감하는 교권침해 강도는 더 세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교원치유지원센터는 올 2월 개정돼 8월부터 시행되는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각 교육청이 설치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교권침해를 예방하고 피해 교원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려면 교원치유지원센터 설치가 필수라고 보고 내년에 모든 교육청에 하나씩 두도록 할 방침이다.

교원치유지원센터에서는 △일대일 개인심리상담 △정신과 전문상담 △영화·미술·음악·명상 치료 등을 통해 교권침해 피해를 입은 교원들의 자존감을 회복시킬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권침해로 상처받아 학생이나 학부모 앞에 떳떳하게 서지 못하고 극단적으로는 교단에서 나가게 되는 사례를 막기 위한 목적”이라며 “교원들이 자신감을 가져야 교권침해 문제도 줄일 수 있고 공교육도 제대로 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또 대통령령인 ‘교원예우에 관한 규정’에 교권침해 정의를 학부모 교사 교원에 의한 △언어 △신체 △SNS 등에서 이뤄지는 폭언 폭설 등으로 구체적으로 명시할 방침이다.

교육부 방침에 대해 학교 현장도 긍정적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2014년 전국 교원 1674명에게 조사 결과 78.1%가 ‘감정 근로에 따른 우울감과 자존감 상실이 심각하다’고 했다”며 “교원치유지원센터가 교권침해 사건의 구심적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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