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SNS에서는]우유 같은 여자, 치즈 같은 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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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 사회부 기자
전주영 사회부 기자
여자를 굳이 우유와 치즈에 비유해야 한다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아래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댓글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한 의사의 의학 칼럼입니다.

“치즈와 우유의 유통기한의 차이는 어떤 것이 있을까? 치즈는 유통기한이 길다. 솔직히 유통기한이 조금 지나도 그냥 먹는다. 하지만 우유는 어떤가? … 1등급 우유인데 유통기한이 3일 지난 것을 마실 것인가? 3등급 우유지만 유통기한이 3일 남은 것을 마실 것인가?”

계속 읽어 보면 의학 칼럼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입니다.

‘정상적인 남자는 결혼에서 아이를 원한다. 남자와 그 부모가 생각하는 (여성의 가임기) 마지노선은 34세다. … 남자 측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개할 수 있는 여자 나이의 상한선은 32세다. … 34세 넘은 미혼 여성이 좋은 남편감을 만날 가능성에 기대를 건다는 것은 조금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남자가 자기 나이를 고려해 만나는 여자의 나이를 연장할 것이라는 것은 매우 큰 착각 중의 하나이다.’

저는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젊은 여자 좋다 하듯, 어쩌면 다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또 어쩌면 머지않아 저는 질풍처럼 지나간 20대를 한탄하며 싱크대 하수구에 버려질 상한 우유 신세가 될지도 모릅니다.

글 제목은 ‘30대 전문직보다 20대 전문대 여자가 먹힌다’입니다. ‘30대 후반의 능력남은 30대 중반 여성을 만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당신은 명심해야 한다’는 의사의 충고입니다. 2014년에 쓰인 글이지만 최근 SNS 유명인이 ‘진정한 개저씨(개와 아저씨의 합성어) 칼럼을 발견했다’며 이 글을 공유하면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이 의사의 주장에 동의한 남성들은 ‘역시 배우신 분. 용기 있는 의사 선생님의 글에 박수를 쳐라’라며 댓글을 달았습니다. ‘남자는 42세 넘어가도 정자가 만들어집니다. 여잔 42세 넘어가면 폐경기가 와서 난자가 안 만들어져요. 남녀가 똑같다고 주장하는 여자는 자원입대부터 하고 보시죠?’

이윽고 유치찬란한 남녀 댓글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분기탱천한 여성들은 2010년 항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30대 여교사와 15세 남학생의 불륜 기사를 댓글로 달았습니다. 30대 여성도 얼마든지 매력적이라는 점을 증명한다는 겁니다.

남성들은 반격했습니다. ‘여자는 나이 들면 가치가 떨어지는 거야, 상폐녀(상장폐지녀·주식시장에 빗대어 결혼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당한 여자라는 뜻의 신조어)야’라는 글과 함께. 상황이 심각해지자 글을 올린 의사는 “여성의 나이가 장애물이 되는 현실을 알게 됐고 이런 불편한 진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여성 혐오적인 내용을 담으려고 쓴 글은 전혀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댓글 전쟁이 이성 혐오로 번진 뒤였습니다.

저는 여성의 매력을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재단한 것이 애초 이 칼럼의 문제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령 출산이 가지는 난점과 그 난점의 극복을 의학적 관점에서 조망한 것이 아니라 남자들이 나이 든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마음대로 정의하며 엉뚱한 결론을 내립니다.

설사 서술된 글이 팩트에 매우 가깝다고 한들, 이 글에서 사용된 비유는 비판을 피할 여지가 없습니다. 최근엔 여성 팬층이 두꺼운 인디밴드 가수 윤모 씨가 “음악에서 ‘자궁냄새’가 나면 듣기 싫어진다”고 발언한 사실이 SNS를 통해 밝혀져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윤 씨는 “모성에 대한 공포를 함의한다”는 둥 이해 불가능한 사과문을 올려 조롱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래도 저는 굳이 골라야 한다면 치즈를 고르겠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사람은 저마다의 특색을 안고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을 내는 치즈에 가깝다고 믿습니다. 제가 푸른곰팡이가 서린 블루치즈를 좋아하듯, 상대가 느끼는 매력은 ‘개취(개인의 취향)’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만 덧붙이고자 합니다. “의사 선생님, 1960년대생인 저의 어머니께선 나이 서른일곱에 4.2kg의 건강한 제 막냇동생을 순산하셨습니다. 제 걱정은 제발 참아주세요.”
전주영 사회부 기자 aimhigh@donga.com
#여자#우유#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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