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원 1명이 아동 1만8000명 맡아… 정부예산도 되레 27% 줄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1일 03시 00분


이번엔 네 살배기 딸을… 친엄마 “대소변 못가린다” 욕조 물에 빠뜨려 숨지게
계부는 야산에 암매장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친엄마가 네 살배기 여자아이를 강제로 욕조에 빠뜨려 숨지게 하고 계부와 함께 암매장한 사건이 발생한 지 4년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연이어 터진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실태조사에 나서지 않았다면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뻔했다.

정부는 미취학 아동과 의료 기록이 없는 영유아까지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위기 가정을 초기부터 관리하는 등 근본 대책이 없다면 그저 사후 확인만 가능한 뒷북 조치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장기 결석인데 관리 대상서 누락

충북 청주청원경찰서는 2011년 12월 A 양(당시 4세)의 시신을 암매장한 혐의(사체 유기)로 안모 씨(38)를 20일 구속했다. 안 씨는 A 양의 의붓아버지. A 양의 친어머니 한모 씨(36)는 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구속된 안 씨는 “애 엄마가 대소변을 못 가린다며 딸을 물이 차 있는 화장실 욕조에 세 차례 정도 집어넣었는데 의식을 잃었다. 아이가 숨진 뒤 이틀 정도 집 베란다에 놓아두었다가 충북 진천의 한 야산에 암매장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일까지 A 양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 씨가 남긴 유서에는 “가족에게 미안하다. 나 때문에 아이가 죽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A 양의 죽음은 끝까지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2014년 1월 A 양의 취학통지서가 나오자 한 씨는 학교에 입학시키겠다고 통보했다. 학교 측은 입학 처리를 하고 반 배정까지 마쳤다. A 양이 나오지 않자 학교 측은 전화로 출석을 요청하고 내용증명까지 보냈다. 그러나 부모는 “홈스쿨(가정학습)을 하겠다”고 했고 60일간의 유예처분 뒤 A 양은 ‘정원 외’로 분류됐다.

학교 측은 이런 사실을 충북도교육청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미취학이 아닌 장기 결석 상태였지만 2년간 A 양은 교육당국과 지방자치단체의 관리를 전혀 받지 못했다.

○ ‘16kg 소녀’가 밝혀낸 끔찍한 진실

지난해 12월 인천에서 아동학대를 견디다 못해 몸무게 16kg의 소녀(당시 11세)가 탈출한 지 20일로 100일이 됐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 곳곳에 숨겨져 있던 아동학대를 세상에 끄집어낸 계기가 됐다. 올 1월 경기 부천시 초등학생 시신 훼손, 계모에게 학대받다 숨진 3월 초 경기 평택시 신원영 군(7) 사건 등이다.

A 양 사건도 마찬가지다. 3년째 A 양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을 수상히 여긴 학교 측이 뒤늦게 확인에 나서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안 씨 부부는 학교에 계속 “아이는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주민센터 사회복지담당 공무원 B 씨(28·여)가 전산자료를 조회하고 사실 확인에 나서면서 부부의 거짓말이 드러났고 결국 진실이 밝혀졌다.

보건복지부는 의료 기록이 전혀 없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3월부터 가정을 방문해 양육 환경을 점검할 계획이다. 또 2월부터는 미취학 아동과 장기 결석 중학생에 대해서도 일제점검을 실시했다. 하지만 정부의 뒤늦은 현장 점검이 사후약방문 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동학대를 선제적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올해 아동학대 관련 중앙정부 예산은 약 185억 원으로 지난해(252억 원)에 비해 약 27% 감소했다. 아동보호서비스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아동복지 체계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아동보호전문기관도 56곳에 불과하고, 각 기관에서 근무하는 상담원은 평균 9명 정도다. 상담원 1명이 약 1만8000명의 아동을 담당해야 하는 수준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예산과 인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뒷북 행정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청주=장기우 straw825@donga.com / 유덕영 기자
#아동#학대#살인#부모#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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