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 1개에 15만원… 수강권 은밀거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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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신학기 수강신청 대란… 게시판 통한 강의매매 판쳐

서울의 한 사립대 3학년이 된 이모 씨(26)는 지난달 수강신청 때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다. 전공과목을 신청해야 하는데 인터넷이 느려 실패한 것. 마침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 “갑자기 휴학하게 돼서 ○○과목을 못 듣게 됐습니다. 필요하신 분 연락 주시면 넘겨드리겠습니다”라는 글이 눈에 띄어 살펴보니 자신의 전공과목이었다. 이 씨가 글을 올린 학생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줄 수는 있는데 15만 원을 달라”는 황당한 대답이 돌아왔다. 이 씨는 “같은 학생끼리 어려운 처지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모습이 분했다”며 “이번 학기에는 그 과목을 포기하고 2학기에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대학에서 신학기가 시작된 가운데 고질적인 수강신청 대란과 강의 매매가 활개를 치고 있다. 대학들은 저마다 제재 규정을 들어 “매매 사실이 적발되면 처벌한다”고 경고했지만 유명무실하다는 게 중론이다.

동국대는 학생 온라인 게시판에 “재학생들이 수강 교과목을 사고파는 행위는 학칙 제11장 1항에 의해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화여대도 “학교 게시판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으며 매매 사실이 확인되면 수강이 취소될 수 있다”는 공지를 올렸다. 서울대는 학생회 차원에서 학내 게시판에 강의 매매 글이 올라올 경우 이를 삭제하고 있다.

연세대는 지난해 ‘수강신청 마일리지’를 도입했다. 재학생들에게 1인당 마일리지 72점을 주고, 수강신청을 할 때 마일리지를 나눠 걸 수 있도록 한 것. 가령 똑같은 경영학개론을 신청할 때 A 학생은 마일리지 20점을 걸고, B 학생은 22점을 걸면 B 학생에게 우선순위가 주어지는 식이다. 수강신청 개시 시간마다 인터넷 접속자가 한꺼번에 몰리고 교내 전산실 자리다툼이 일어나는 등의 고질적인 병폐를 없애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하지만 학생들은 “임시방편”이라고 지적했다. 대학들은 학칙으로 강의 매매를 금지하고 있지만 이를 적발하기가 어렵다. 온라인 익명게시판을 통해 첫 접촉이 이뤄지고, 사고파는 당사자 둘이 연락해 인터넷으로 강좌를 넘겨 제3자가 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연세대 마일리지제도는 재학생들로부터 ‘연세베거스’(연세대와 라스베이거스의 합성어)라는 조롱을 듣고 있다. 과목마다 마일리지를 거는 방식이 마치 도박에 돈을 베팅하는 것과 비슷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연세대에 재학 중인 서모 씨(21)는 “제도가 도입된 이후 서로 무슨 과목에 몇 마일리지를 넣었는지 알아내려고 혈안이 됐다”며 “게다가 한 과목에 걸 수 있는 최대 마일리지가 36점인데, 그만큼 걸어도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인기 강좌의 정원을 늘리지 않는 한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지방 사립대에 다니는 김모 씨는 “매년 학생들이 몰리는 전공, 인기 강좌, 교수는 거의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며 “몇몇 인기 강좌만 정원을 여유 있게 늘려도 숨통이 트일 텐데 대학본부가 이를 방치한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강의 평가를 정원에도 반영해 학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은 과목은 정원을 늘려 주고, 그러지 못한 과목은 줄이는 쪽으로 나아가야 교수들도 경쟁력이 생긴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 대학 관계자는 “강좌 인기도에 따라 정원을 매 학기 조정하면 교수들의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수강권#거래#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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